두인디 팀

임도연

돌이켜보면 약 3년 전 절친한 영국인 친구가 눈을 반짝이며 한국 인디 웹사이트에 대한 계획을 말해준 것이 이 모든 일의 원흉이었다. 당시 꽤나 멋지게 들리던 그 생각이 바로 악마의 덫일 줄이야! 하지만 후에 친구를 두인디로 잡아끌어왔으니까 나도 어쩔 수 없는 공범인가..? 표면상의 주업무는 번역이고, 비표면에서 이것저것 많은 것을 하고 있다. 두인디와 함께 하면서 삶의 행복수치가 올라갔다. 음악은 크게 장르를 가리지 않고 듣는 편. 인디/락을 좋아해 홍대를 다니지만 클래식 역시 사랑한다.

 

 

 

 

패트릭

영국인인 저는 2006년에 한국 땅을 밟았습니다. 한국 인디 신을 발견하기까진 좀 더 시간이 걸렸지만 그것을 알게되자마자 사랑에 빠졌고, 제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신에 합류하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몇년 동안 계속해서 멋진 공연을 보러 다니면서 많은 밴드의 팬과 친구가 될 수 있었습니다. 저는 그들의 팬임과 동시에 (역시 밴드를 하는)연주자라는 위치에서 한국 인디 신에 대한 남다른 시선을 기를 수 있었습니다. 여가 시간을 이용해 몇 번의 자선공연, 많은 수의 랜덤 공연을 꾸렸으며, 2013년에 한강 옆에서 하루 동안 진행되는 무료 페스티발을 열었습니다.(가까운 시일내로 부활시키고 싶습니다.) 오랫동안 해보고 싶었던 웹사이트도 만들고, 한국 인디 신에서 수년간 제가 얻은 모든 즐거움과 고마움을 갚음하려고 두인디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최일화

밴드 동아리를 하다가 인디음악을 접하게 되었고, 모 TV프로그램을 동해 한 밴드의 덕질을 시작했어요. 고급 덕질을 하고 싶어서 두인디를 하게 되었는데 두인디덕이 되었네요(컴퓨터랑 핸드폰 바탕화면이 다 두인디). 디자인 공부도 두인디 때문에 더 열심히 하고 있어요. 다 필요 없습니다. 일을 많이 시켜주세요! 더! 더!!! 더!!!!!

 

 

 

 

 

김진

‘인디’에 빚을 진 것도 아닌데 ‘인디’를 위해 무언가를 해야한다고 막연히 생각하다가 우연히 기회가 와서, 무언가 뭐라도 ‘하려고’ 합니다. 음악은 폭넓게 들으려고 노력하지만 마음처럼 잘 안 돼서 락을 주로 들어요.

 

 

 

노송희

뮤지션들이 그득한 집안에서 태어나 뱃속 아기일 때부터 음악을 접하고 사랑에 빠졌습니다. 아는 건 없는데 좋아하는 건 많습니다. 사실 여기저기 관심만 잔뜩 있고 잘 이뤄논 건 없습니다. 그래도 곧잘 흉내는 낼 수 있으니 이것저것 많이 가르침을 받고 살고싶습니다. 이것저것 가르쳐달라고 쫄쫄 쫓아다닐 수도 있습니다..! 하루종일 음악 들으면서 공부만 하는 게 꿈인데 이루기 참 쉽지 않네요. 초등학생일 때 엄마 따라가서 들은 라디오헤드 음악 때문에 이 씬에서 일을 하고 싶어졌습니다. 정작 엄마는 라디오헤드가 누군지 기억하지 못하시지만.

 

 

 

 

김민집

어렸을 때부터 남들이 다 하는 태권도 대신에 검도를 배우고 피아노 안배우고 바이올린 하겠다고 하는 등  남들과 조금은 다른 걸 하고 싶어했던 것 같기는 하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이 모든 것의 시작은 초등학교 5학년 때 크라잉 넛의 말달리자 뮤직비디오를 봤을 때부터 였던 것 같다. 그 날것 그대로의 생생한 느낌, 뒤죽박죽인 그 와중에 느껴지는 에너지. 그 뮤직비디오를 보며 나도 언젠가 저들과 함께 뒤섞여 놀고 싶다고 생각을 하며 학창시절 내내 인디 신을 동경을 해왔고, 2007년부터 홍대 공연장을 돌아다니며 그 꿈을 이룰 수 있었다. 10년간은 내가 그들에게 받아왔으니 이제는 그 보답을 할 차례라고 생각한다. 인디 신 화이팅, 두인디 화이팅!

 

 

 

 

채연식

무언가의 간섭없이, 누군가의 지시없이, 항상 주체적으로 나아가는 사람들이 모여 자립적으로 커온 씬을 동경해왔습니다. 그리고 항상 그 씬의 일원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품어왔습니다. 이제야 첫 발을 내딛는 것 같습니다. 음악뿐 아닌 여러 분야에서 ‘두인디’하고 싶습니다.

 

 

 

 

 

한예솔

대학시절 가장 좋아하던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젊은이여, 변방에서 창조의 길을 내라!" 신나면서도 뜻있는 사업을 하는 친구들과 같이 일하게 돼 기쁘다. 보고, 듣고, 쓰는 것을 좋아한다. 최근 실직기타가 되어 금드럼과 은베이스를 구하는 중이다. 생계 유지를 위한 부업(?)으로 직장을 다니고 있다.  평생 맘편히 음악하며 살고 싶다는 작은 소망이 있다. 재미있게 살고 의미있게 죽고 싶다. 우리 이 씬에 재산은 못 나눠도 재능은 나눠요.

 

 

 

 

이주빈

누벨바그의 중심에 있던 영화감독 프랑수아 트뤼포는 영화광이 되는 과정을 3단계로 나눴다. 첫 번째는 같은 영화를 두 번 보는 것, 두 번째는 영화에 관한 글을 쓰는 것, 세 번째는 영화를 만드는 것. 그의 말을 음악에도 적용시키고 싶었다. 그러다 보니 지금 여기, 두인디까지 오게 됐다. 재밌어서 시작한 일, 끝까지 재밌으면 좋겠다. PEACE

 

 

 

 

 

김한솔

소설을 전공했고 햇수로 8년째 글을 씁니다. 군인 때 독학으로 배운 기타도 가끔 퉁깁니다. 잘빠진 길을 미끄러지는 외국 형아들을 동경하며 스케이트보드도 탑니다. 상담하는 걸 좋아해서 미술심리 상담사 자격증을 땄습니다. 생일엔 DSLR을 사서 사진을 시작했습니다. 서포터즈, 기획단, 교육생, 자원봉사 그런 것도 한 스무 번쯤은 한 것 같습니다. 않는 것보단 하는 게 낫다는 생각으로 살았고, 살고 있고, 살 것 같습니다. 인디는 잘 모르지만 글과 음악은 좋아합니다. 그리하여 두인디와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아마 쓸모 없지는 않을 겁니다. 재밌고 기억에 남을만한 일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

 

 

 

 

곽혜민

태생적으로 흥이 많은 사람이다. 5살 때 애니를 보다가 엔딩곡을 다 듣고 학원에 가겠다고 떼를 쓰고, 기어코 엔딩곡을 들으며 춤을 추고 나서야 학원을 갔다. 할머니댁에 가는 날에는 지하철에서 춤도 추고 그랬다. 흥이 많은 탓일까 어려서부터 음악이 좋았다. 악기를 배우는 것도 노래를 듣는 것도 부르는 것도 좋았다. 지방에서 자라왔기 때문에 공연에 문외했던 나는 고등학교 2학년 개학 직전 브이홀에서 공연을 보게 되었다. 아, 내 흥을 마음껏 분출할 수 있는 곳을 드디어 찾았구나! 그때부터였던가 공연 보는 데 돈지랄을 하던 게. 음악, 공연은 공통되지 않은 제 각기의 사람들을 한 데 모이게 하는 특별한 힘을 가진 것 같다. 이 힘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알려주고 싶다. 두인디를 하며 인디 씬에 대한 얘기를 나눠보고 사람을 한 데 모이게 하는 특별한 힘을 가진 멋진 공연을 기획해보고 싶다. 화이티잉!!!!

 

 

 
 

Marijn Mannien

한국에 온지 고작 몇주가 지났을 뿐이지만, 전 벌써부터 이곳의 문화에 흠뻑 빠져버렸습니다. 한국 인디 음악을 국내를 비롯 전세계로 알리고 있는 두인디의 홍보를 돕기 위해 왔습니다. 모든 사람이 이렇게 멋진 음악에 대해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전 제 나라인 네덜란드에서 창조적 산업에서의 커뮤니케이션학을 전공하였습니다. 여행과 럭비,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합니다. 올해는 정말 멋진 한해가 될 것 같습니다!

 

 

 

 

락앤로즈

2002년에 남아프리카에서 한국의 대학 영어강사로 처음 왔을 때, 저는 바로 한국음악과 사랑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몇년 후에 서울로 이사하고 나서 친구를 통해 홍대 신에 매료되었습니다. 제가 갖고 있는 드라마에 대한 배경지식이 라이브 공연을 향한 제 흥미를 더 돋구어 주었고, 저는 금새 중독되어버렸습니다. 매주 가능한 한 많은 공연을 보러 다녔습니다. TBSefm 라디오에서 짧게 리포터 아르바이트를 했었는데 그 시간은 신의 많은 음악가와 팬들을 만나는 기회였습니다. 그때쯤 패트릭과 전 페이스북에서 친구가 되었고, 그는 론칭 전의 두인디로 절 초대해줬습니다. 홍대 커뮤니티는 제게 많은 영감을 주었고 또한 이곳에서 전 환영받는다는 기분을 느꼈습니다. 이는 한국을 더욱 더 제2의 고향처럼 느끼게 했습니다. 공연장에 가면 외국인과 한국인의 차이가 사라져버립니다. 제 학교 학생들과 한국 친구들, 외국 친구들에게 한국 인디 음악에 대해 많이 알려주는 방법으로 뮤지션들이 저에게 주었던 많은 것들을 보답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겨서 영광입니다.

 

 

 

이윤지

“와 내 친구는 인디 웹진도 하네” 신기해하고 있었는데 정신 차려 보니 내 이름 석 자가 두인디 기사 아래 적혀 있고 팀 멤버 임 모씨랑 키득키득하고 있을 때가 많더라. 이것이 ‘잡아 끌려’ 온 건가 생각하니 왜인지 뒷덜미가 간지러운 것 같기도 하다. 그래도 두인디와 함께 하면서 더 많이 보고 듣게 되어 떡밥에 배부른 뚱땡이 생선이 되어가는 중. 밥값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파닥파닥.

 

 

 

 

알렉스

미군의 신분으로 2011년 한국을 왔을 때 전 제가 어떤 경험을 맞닥뜨리게 될 것인지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2개월이란 짧은 시간 안에 전 파워풀하고 생기 넘치는 한국 인디 신에 홀딱 빠져버렸고 미국에 있는 음악하는 친구들에게 계속 자랑했습니다. 살면서 저는 언제나 음악에 미친 놈이었지만, 한국 인디 신의 일원이 되고나서야 비로소 음악이란 것이 제게 얼마나 큰 의미가 있는지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음악은 제 삶과 커리어를 지속하게 만드는 원료였습니다. 이와 같은 마음에 전 제가 사랑하는 이런 멋진 신과 이를 만들어 낸 사람에게 보답할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하고 싶었습니다. 전 매주 최소 두번, 가끔은 세번(더 가끔은 네번 정도….) 공연을 보러갔는데 그걸론 충분치 못했습니다. 끝에가서 전 녹사평에 파우와우라는 공연장을 열게 됐습니다. 그곳을 운영한 것은 제 인생 최고로 특별했던 순간 중 하나입니다. 그로부터 머지않아 패트릭이 어떻게 신을 촉진시킬 있을 것인가란 제 고민에 답해 줄 수 있는 근사한 생각을 갖고 제게 다가왔습니다. 그의 비전을 통해 두인디가 탄생했습니다. 전 기사를 작성하고, 교정하고, 사이트 운영을 돕지만 불행하게도 너무 머나먼 한국 바깥에 있습니다.(지금 당장은요.) 두인디는 몹시 근사하며 창조적인 아티스트들로 가득 찬 활력 넘치고 훌륭한 한국 인디 신과 저를 연결하는 통로입니다. 이 프로젝트를 함께 하게 된 것은 참 행운입니다. 한국 아티스트들이 더욱 지속가능할 수 있도록 도와 이 근사한 한국 인디 음악의 기초를 만드는 우리의 목적을 성사시켰으면 좋겠고, 세계 다른 나라들도 그럴 자격이 충분한 이 멋진 한국 인디 신에 대해 알게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