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된 날짜 2017년 12월 22일 (금)

인터뷰

# 20주년 기념 앨범이 나왔습니다. 사람으로 치자면 20년은 청춘에 해당하는 해인데, 느낌이 어떠세요?

준다이: 어우, 되게 독특한 시각으로 접근해주시네요. 기분이 되게 좋아졌는데요?

안경순: 되게 신선한 시각인데요.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은 한 번도 없는 것 같아요.

준다이: 깔끔하게 세탁을 싹 해주시네.

안경순: ‘우리가 40살이 되었구나’ 그 정도는 생각했는데. 밴드 나이가 20살이라고는 왜 생각을 못 했지? 우리가 20주년이 되었다는 건 계속 머리속에 있지만, 밴드 나이가 스무 살이 되었구나, 그런 청춘 쪽으론 생각을 못해봤어요.

준다이: 생각하지도 못한 개념이 나왔어. 우리는 우리가 40살인 것만 생각하고 있었잖아. 밴드가 20년이면 이제 청춘에 접어든 거라는데... 충격받았어. 일단 밴드는 그냥 모여서 ‘우리들끼리 뭐 해보자’ 하면서 가 결성되는 시점인데, 사실 그 이후가 스토리가 훨씬 많거든요. 초창기에 오히려 막 하루, 하루 그 몇 년 간이 엄청난 추억들이 있고, 어느 정도 자리를 잡거나 폼이 완성이 되면은 그 뒤에는 큰 공연이나 사건 사고들이 기억에 남는, 딱 그 정도. 그 교과서에 나오는 연표처럼 쓴다고 하면은, 고조선 이때부터 고려에 진입하기 전까지가, 고려도 아닌가, 하여튼 막 원시시대 즘에 쓸데가 없을 정도로 각종 일들이 많구요. 그다음부터는 무슨 왕 탄생, 사망 거의 이 정도로 연표가 만들어질 것 같아요. 20주년 앨범 준비하고 공연 준비하면서 옛날얘기가 자꾸 나오는 거예요. 그런 얘기를 할 수 있는 게, 반대로 생각하니까 이런 계기를 겪은 사람들만 누릴 수 있는 또 하나의 특권인가? 라는 생각도 들고, 재밌더라구요.

# 20주년이 결코 짧은 시간은 아닌데, 여기까지 올 수 있던 원동력이 있다면?

준다이: 이 얘기를 안 할 수가 없는 게 레이지본은 해체 기간이 있었어요. 꽤 긴 시간이었구요. 언젠가 헬로루키 축하공연을 갔을 때 소개영상에서 ‘레이지본은 밴드가 겪을 수 있는 모든 것을 경험한 밴드다’라는 문구가 나오더라구요. 아니 뭐 죽은 놈도 없는데 뭘 다 겪었대, 하면서 저희끼리 넉살 좋게 웃었어요. 하지만 사실 많은 것을 겪었고 그러면서 마음이나 시각이 열리게 된 것이 있죠. 해볼만큼 다 해봐서 이제 재미없다는 것이 아니고 또 무슨 일이 벌어질까, 두렵다. 뭐 이런 것에 더 가까워요.

# 되게 흥미로운 대답인데요?

노진우: 두려운 건 아직도 뭔가 꿈이 있다는 거 아닌가?

준다이: 그럼. 모든 두려움이나 실망은 기대가 있으니 있는 거죠.  사실 요근래 저희 또래 친구들이 예전에 느꼈던 감정이나 어떤 에너지가 많이 퇴색되는 것이나, 동기부여 될만한 것들이 사라지는 것에 대해 많이 이야기를 나눠요. 뭔가 재밌겠다 싶은 걸 하루종일 고민하고 생각하는 일이 잘 없대요. 예전 같으면 재밌을 것 같으면 일단 무작정 저질렀을텐데, 요즘은 할까 말까부터 고민하고. 근데 아까 말한, 무슨 일이 벌어질까 기대하고 궁금해하는 그런 생각은 참 좋은 것 같아요. 우리 전부 정말 아직도 철이 하나도 안 들어서. 무슨 일이 터질지 모르겠어요.

# 데뷔 때부터 지금까지 가장 기억에 남는 추억이나 에피소드는?

안경순: 뭐 해체와 재결성 아닌가요. 그게 가장 큰 거 같아요. 심정적으로나 외적으로나 터닝포인트죠. 재결성이라고 해두죠. 해체보다.

준다이: 레이지본은 드라마틱한 공연이 많았어요. 외국 공연도 많이 했는데 가장 오래 기억에 남는건 2013년 한국 지산 락 페스티벌 공연이예요. 지산에서 공연을 하는데 앞에 사람이 없었어요. 한 삼십 명도 안 돼서 꽉꽉 모여봐야 한줄도 안되는거죠. 그 사람들이 띄엄띄엄 기다리고 있었는데 무대 올라가기 전에 그 사람들을 봤죠. 그냥 즐기자. 이렇게 된 거 우리끼리 지랄하고 놀자. 보는 사람 없으면 더 지랄하고 놀 수 있지 않느냐. 그러면서 처음으로 화이팅을 했어요. 우리끼리 막 손 모으고 즐기자고 말한 후 무대에 올라가서 공연을 하는데, 그 왜 그런 거 있잖아요. 단지에 물이 차는 게 안 보이는 정도의 속도가 아니고, 그게 실시간으로 보이는 속도 있잖아요. 사람들이 막 뛰어오고, 걸어오고, 눈으로 치면 되게 커다란 눈송이 같은 식으로 사람들이 계속 차다가, 콘솔 박스 넘어 메인까지 사람들이 들어오고, 옆에 슬로프 있는데 까지 사람들이 다 찬 거에요. 그러니까 아마 거기 있던 사람들이 거의 다 온 것 같아요. 그래서 그 공연이 가장 드라마틱하게 느껴졌고, 정말 좋았죠.

# 20년 동안 음악을 하면서 잃지 않고자 했던 신념 혹은 마음가짐이 있다면?

준다이: ‘신념’처럼 특정한 단어로 존재하지 않는 것 같지만 이거 한가지는 계속 유지되고 있는 것 같아요. 레이지본은 멤버들 스스로가 엄청 즐기면서 하니까 사람들한테서 ‘좋은 인상을 주는 공연이었다’라는 피드백을 계속 받아온 것 같아요. 하지만 사실 저희가 뭐 뛰어난 가창력이나 대단한 편곡력이나 그런 쪽으로 뚜렷하게 능력치가 확 솟구친 밴드는 아니거든요. 근데 은연중에 공연 하나만큼은 우리가 존나 짱이다라는 것이 몸에 몸에 베어있는 것 같아요. 근데 예전하고는 다른 게, 옛날에는 그런 걸 엄청 바깥으로 표출했어요. 우리가 존나 짱이야, 연예인 병들 다 꺼져 뭐 이랬는데…

노진우: 진짜 어디서 나온 밑도 끝도 없는 자신감이었는지.

준다이: 맞아. 근데 지금은 나이를 먹은 것도 있지만 밴드 외에도 각자 하는 일이 다양하게 생겼고, 또 그만큼 많은 걸 겪어왔어요. 예전에는 음악만 하던 진짜 우물 안 개구리였고 거의 연예인하고 비슷했어요. 합주하고, 곡 쓰고, 차에서 내려서 아니면 대기실에서 모두가 막 ‘아유 잘 부탁드립니다’ 그러면 우리가 막 ‘잘할게’ 이런 식이었지. 근데 세상사는 게 되게 간단한 거더라구요. 그냥 우리는 음악 하는 사람들이고, 무대에 계신 분들도 다 각자 일하는 분들이고,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이나,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삶을 우리도 겪었어요. 겪고 있고. 그러니까 이제는 되게 분명해지더라고요. 세상에 누가 더 위대한 건 없구나. 다 뭐 친구 같은 거고. 소위 말하는 싸가지가 좀 생긴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예전처럼 밖으로 표출할 이유가 없어져서 안하는 것 같고. 근데 무대나 공연 같은 것에 관해서는 아직 욕심이 있는 것 같아요.

노진우: 양보할 수 없죠.

준다이: 저는 자전거도 많이 타고 마른 타입인데 주변에서 그냥 웃으면서 그런 얘기를 해요. 멤버들이 살도 찌고 막 아저씨처럼 보이기도 하고 그러는데, 너도 좀 달라져야 하는 거 아니냐. 이번에 누구랑 공연하는데, 좀 관리하고 그래야 되는 거 아니야? 이런 이야기. 근데 이건 좀 바보 같은 질문이예요. 우리가 다른 밴드보다 체중이 한 2~3배 나가는데, 아직도 우리 밴드는 그들보다 훨씬 더 많이 뛰고 훨씬 더 많이 날아다니거든요.

노진우: 힘들어 죽겠어.

준다이: 딱 노래하다가 뒤돌아봤을 때, 얼굴이 입에서 폐 같은 게 나올락 말락하는 표정이에요. 중요한 건 그거에요. 무슨 소리가 나오든 간에, 아무리 멀쩡하고 존나 간지나게 해도 우리 이길 팀은 없는 것 같은데? 더 쪄도 되겠다. 그런 생각을 해요. 그래서 누가 그런 얘기 하면 그냥 공연 보라고 해요.

# 요즘 즐겨듣는 음악들을 소개해 주세요

노진우: 볼빨간사춘기.

안경순: 저는 오히려 어렸을 때 듣던 음악들을 찾아 듣게 되더라고요. 요즘 나오는 음악들을 찾아보면서 듣기에는 장르도 그렇고 양적으로도 그렇고 너무 방대하기도 해서 그런 것 같아요.

노진우: 그린데이 베스트 좋던데.

안경순: 그러니까 뭐 고등학교 때 듣던 90년대 초반에 나온 앨범 같은 것들을 자꾸 찾아 듣게 되더라고요. 뭐랄까. 개인적인 추억 같은 거랄까. 나이 들면서 더 빈도가 높아진 것 같아요. 이러다가 이제 5년, 10년 후 되면 완전히 옛날 것만 듣겠죠? 젊어지고 싶어서 그런가.

준다이: 주변에서 음원을 자주 내잖아요. 음반 시장이 붕괴되서 싱글로 자주 내게 되고, 주변에서도 자주 싱글 발매 소식이 들려오고, CD를 주는 사람도 많고. 싱글 시대가 와서 그런지 그런 식으로 하나둘씩 접하게 되는 곡이 많은 것 같아요.

노진우: 저는 반대로 누가 이렇게 CD 같은 거 주면은 안 듣게 되더라고요.

안경순: 맞아 나도.

준다이: 저는 CD 플레이어가 아예 컴퓨터에 연결이 안 돼 있어요. CD를 받으면 스트리밍으로 찾아서 들어요.

노진우: 그래서 나는 요새 누가 CD 주려고 하면 아예 mp3 파일을 이메일로 보내달라고 해.

안경순: 저도 그래요. 여기가 합주실이다 보니까 밴드들이 CD 만들면 갖고 와요. 근데 여기엔 CD 플레이어도 없고.

준다이: 나중에 그중에 한 장 정도는 이 형이 그거 팔아서 월세 내는 앨범이 나올 수도 있어요. 중고나라에 팔아서. 초희귀명반 이런 거.

노진우: 국카스텐 1집이 중고나라에서 20만원이래.

안경순: 아 그건 없다.

노진우: 그게 있어야지.

준다이: 레이지본도 조작 한 번 해볼래?

노진우: 근데 레이지본 1집이 아직도 팔아.

안경순: 아 프리미엄이 될 수가 없구나.

준다이: 맞아… 그 지식쇼핑 있잖아. 네이버 검색하면 밑에 최저가 나오는 거. 그거 보면 아직 유통이 되고 있어.

노진우: 나 저거 있는데, 펑크대잔치98. 테이프.

# KBS [불후의 명곡]에 몹시 오랫동안 출연하셨는데 방송출연 이후 삶이 직접적으로 변화된 부분이 있나요?

노진우: 윤택해지진 않았어요.

준다이: 윤택해진 건 없는데 저는 그 방송에 대해서 항상 중요하게 생각해요. 우리가 재결성한 사이에 세상이 좀 바뀐 게 있다면 그런 방송들이 생겼다는 것 같아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불후의 명곡]은 진짜 고마운 방송이에요. 제작하는 쪽에서 레이지본의 음악을 좋아하니까 레이지본의 무대를 선보이고 싶다면서 불러주셨는데 처음엔 좀 오해했어요. 어쨌든 예능이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경연 프로그램은 이럴 것이다 하면서 하는 얘기들이 있잖아요? 조작이라든가, 방송의 의도대로 무대를 만들어간다든가. 근데 그런 게 전혀 없었어요. 너희가 하고 싶은 음악을 이 곡을 가지고 해달라, 그리고 음향적인 부분 같은 뮤지션이 무대를 꾸리는 데 있어서 필요한 것에 대해서 최대로 지원을 하겠다라고 했고. 그들이 최상의 상태로 지원하고, 그만큼 우리가 최고의 무대를 만들었으면 좋겠다라는 식이더라고요. 처음에는 어 이것 봐라 하면서 했는데, 정말 저희가 하고 싶던 데로 표현한 것들이 가감없이 전파를 타더라고요. 저희는 전부를 다 보여줬고 그로 인해 많은 사람이 레이지본이라는 팀이 활동하고 있는 걸 다시 알게 된거죠.

노진우: 그거 한번 나가려고 연습을 무지하게 해요. 말도 안 되게. 새벽에 만나 한 2시까지 연습하고 다음날 아침 7시에 만나 출근 전에 다시 연습하고, 또 일 끝나고 와서 연습하고 그랬어요. 음악만 하고 살고 싶다는 생각이 더 간절하게 생기더라고요.

준다이: 진짜 고마운 프로그램이에요. 제작진들이 되게 많은 고민을 함께 해줬어요. 레이지본이 빨리 대중적으로 많이 유명해져서 음악만 하고 살았으면 좋겠다라는 이야기를 해주더라고요. 되게 고맙죠. 근데 그걸 가지고 약 팔면서 그런 말하면 x발 x까라 그럴 건데 아니었어요. 자신들의 틀을 재시하고 우리보고 맞추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무대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먼저 물어봐줬어요. 그런 오해가 정말 깨졌어요. 또 가장 극명하게 달라진 사실은 우리가 대중적으로 알려진거죠. [불후의명곡] 시청자 폭이 굉장히 넓어요. 젊은 사람들보다는 중년 이상 대가 되게 많이 보는 프로그램이거든요. 아줌마, 아저씨들이 그렇게 알아보십니다. 저 어제 동대문 감자탕집엘 갔는데 사장님이 오시더니...

노진우: 맞죠~? ㅋㅋㅋㅋ

준다이: 아니! 그렇게 얘기 안 해. 그렇게 얘기 안 하고 감자탕이 끓으면 앞접시에 담잖아요? 근데 그냥 담는 것이 아니고 큰 뼈를 넣고 국물 엄청 담고, 우거지도 듬뿍 얹고, 깻잎 해서 큼지막하게 담은 접시를 제 앞에 딱 주시더라고요. 그러면서 ‘아이구 가수분이 오셨네~’ 이러더라고요. 그 뒤로 계속 나만 보면 웃으셔.

노진우: 가수분ㅋㅋㅋㅋㅋㅋ

준다이: 그런 식으로 많이들 알아보시는 건 있고요. 근데 꼭 그래서 보람있다기 보다 정말 [불후의 명곡]이 고마운 건 따로 있어요. 무대에 신경을 써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저희에게 가장 중요했던 사실은 레이지본을 높게 사고 계속해서 불러줬다는 것이었고 아직도 그게 정말 고마워요. 홍대 밴드들이 그런 방송을 해봤으면 좋겠어요.

# 올해 여름 두인디가 함께 준비한 공연에서 준다이씨는 얼굴과 옹몸에 붕대를 감고 노래하셨죠. 이후 잘 회복하셨나요? 그리고 그때 왜 공연을 취소하지 않았어요?

준다이: 그런 생각을 안 해봤는데.

노진우: 정말 제가 공연 취소하려고 했어요. 준다이한테 공연 취소하는 것이 맞지 않겠냐고 했어요.

준다이: 이 상태로 똑바로 하겠냐 이거죠.

노진우: 일단 병원을 당장 가자고 했죠. 내 눈으로 확인하기 전까진 못 믿겠으니, 너의 의견은 지금 중요하지 않다.

준다이: 너는 지금 뇌진탕 상태야. 말이 오락가락하고 있어! 이거였죠.

노진우: 근데 진짜 얘 같은 말 다섯 번, 여섯 번씩 계속했어요. 그래서 이거는 좀 위험하니까 병원을 데리고 갔어요. 근데 의사 선생님이 그냥 쉬라고만 하셔서 ‘이 정도면 뭐 그냥 괜찮겠네. 그냥 공연해라.’ 이러고 그냥 헤어졌습니다. 하하하. 병원 가기 전까진 조금 심각했어요.

준다이: 근데 공연을 안 간다라는 생각은 안 해봤어요.

노진우: 저 옛날에 맹장 터지고도 했어요.

준다이: 그러니까 이게 전 오히려 더 미안하거든요. 공연을 하기 전 몸 관리를 못 한 것이 오히려 미안한 거지. 근데 나중에 그런 얘기 되게 많이 들었어요. 너무 멋있었다, 가슴이 찡했다, 감동했다. 근데 그걸 듣고 제가 몸둘 바를 모르겠어요. 공연을 하는 것이 기본인 건데, 그걸 했다고 칭찬을 받는 거에 거부감이 들었어요. 오히려 저는 미안한 게 더 컸고, 욕을 하면 제가 사과를 해야 될 문제인데, 언론플레이하듯이 주변에서 부추겨 주는 거죠. 처음에야 기분 좋다가도 나중엔 이거 아닌데 싶더라고요.

# 최근에 나온 ‘팅커벨’ 뮤직비디오가 참 인상적입니다. 여러 사람들이 핸드폰으로 찍은 영상을 모아 만들었던데, 아이디어의 탄생 배경이 어떻게 되는지?

노진우: 준다이한테 나왔습니다.

준다이: 이게 이렇게 된 거에요. 진우 형이 영상 감독이잖아요. CF나 뮤직비디오 등 잘 나가는 것들도 많이 찍고 있어요. 그래서 이번에 ‘사자’ 뮤직비디오를 만들자고 얘기가 나왔을 때, 진우 형이 ‘레이지본도 간지 좀 나보자’ 이렇게 된 거죠.

노진우: 망했어 근데. ㅋㅋㅋㅋㅋㅋ

준다이: 이게 마지막까지도 멤버들 반대로 성사가 안 될 뻔했어요. 왜냐면 진우 형이 외국에 이런 영상이 있으니 이런 느낌으로 우리 뮤직비디오를 찍고 싶다 하면서 딱 틀어줬는데, 거기서 바로 가장 큰 난관에 봉착했어요. 영상이 진짜 멋있어요. 명품 광고에서 모델들이 길을 걸어가고, 진짜 멋있는데… 우리는 바로 그냥 이거죠. 아니, 걷는 새끼들이 우리잖아! 이게 된 거죠. 근데 진우 형의 목표는 한 가지였어요. 레이지본의 뮤직비디오는 항상 웃겼으니 이번엔 다르게 해보자.

노진우: 코미디에요. 옛날부터 1집부터 보면 모든 비디오가 다 코미디에요. 그것도 제대로 된 코미디도 아니고 다 B급.

준다이: 그래서 한 번 진지하게 만들어보자. 왜냐면 진우 형은 그거를 구현할 수 있는 사람이니까. 제작비 걱정 없이 한번 해보자고 한건데 결국은 꽤 잘 나왔어요. 괜찮아서 다른 이야기들도 진행할 수 있었어요. ‘사자’가 완성되고 ‘팅커벨’ 이야기를 했어요. 이런 걸 한번 해보고 싶다고 멤버들한테 말했어요.

# 오래 전부터 하고 싶으셨던 컨셉인가요?

준다이: 일단 ‘사자’는… 또 웃기게 만들어버릴까봐....

노진우: 편집을 못했어요. 진짜 너무 웃겨가지고. 진짜 죽겠는거에요.

준다이: 근데 ‘사자’ 뮤직비디오는 뭐랄까... 되게 뿌듯합니다! 이런 뮤직비디오를 우리가 찍을 수 있게 됐다는 것. 지금 멤버들이 여러 가지 일들을 하고 있잖아요. 그게 정말 큰 도움이 됐어요. 어디 가서 이런 거 찍으려면 돈 한보따리는 줘야 되는데.

노진우: 멤버끼리 반사판 들고 그랬어요. 짐 나르고.

준다이: ‘사자’가 사람들한테 좋은 반응을 얻고 하니까, ‘이제 팅커벨이다-’하고 판을 벌린 거죠. ‘팅커벨’은 그거 밖에 없어요. 영상을 찍어준 모든 출연자가 도와준 거에요. 그냥 아이디어만 가지고 연락을 했어요. 그런데도 우리가 뮤직 비디오 만들거라니까 많은 사람이 신경 써주고 또 신나하니까 오히려 미안했어요. 잘 찍어줬는데 인당 한 2초 정도 밖에 들어갈 수가 없었으니까요.

# 벌써 20주년을 맞는 어른 밴드이지만 혹시 레이지본을 처음 접하는 리스너가 있다면 먼저 추천해주고 싶은 곡은?

준다이: 엄한걸로 엿먹이고 싶다. ‘돌아가는 삼각지’ 이런 거. 하하하.

노진우: ‘아마도 빗물이겠지’ 하하하. 음. 4집 앨범? ‘팅커벨'이나 ‘멋대로 살자’ 이런 노래들이 레이지 본을 대표하는 노래들인 것 같아요.

준다이: 요즘엔 앨범을 쉽게 들을 수 있잖아요. 예전처럼 앨범 들으려고 고생할 필요가 없잖아요. 안되면 1분 미리 듣기로라도 앨범을 다 들을 수 있으니까. 이번 앨범 들어보고 재밌으면 다른 앨범도 찾다 보면은 끝도 없이 나올 거예요. 그런 느낌일 것 같아요.

노진우: 저는 지금까지 만든 앨범 중에 6집이 제일 좋은 것 같아요. 신경질 나고 막 스트레스 많이 받고, 회의하고, 미팅하고, 일하다 까이고, 그러다가도 노래가 나오면 신나요. 그래서 정말 잘 만들었구나란 생각이 들어 멤버들한테 ‘음악 좋은 것 같아. 고생들 했다, 고마워’라고 메세지를 보냈는데, 아무도 대답을 안 해줘서 삐져가지고…

준다이: 레이지본은 그런 게 캐릭터인 것 같아요. 예전부터 스케이트 보드를 좋아했고, 이대, 신촌, 동대문 길거리를 배회하면서 놀고, 밤새 길에서 술도 마시는 그런 친구들과 겪은 내용 대부분이 가사가 되었어요. 아니면 공연 에피소드나 바다 놀러갔던 이야기. 우리가 초반에 단추를 잘못 낀 것 같아요. 판타지를 못해요. 겪지 못한 이야기를 뭔가 메세지를 전하고 싶어서 억지로 만들어내는 그런 것이 안돼요. 판타지를 원하거나, 예쁜 것, 듣기 좋은 것, 그럴 듯한 만들어진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우리 음악에 잘 공감하지 못할 수 있어요. 반대로 솔직한 우리 이야기에 공감하는 사람도 많죠. 옛날부터 그랬어요. 레이지본 공연은 같이 놀던 친구들이 와서 공연을 즐겼고, 지금은 그 친구들이 늙어서 오고, 또 젊은 친구들이 오더라도 어떤 식으로든 살짝살짝 비슷한 삶을 사는 친구들이 많아요. 그래서 지금 앨범도 그렇고 어느 정도는 시대상이 항상 반영돼 있는 것 같아요. 지금 우리가 살면서 느낀 것들을 많이 담았어요. 지난 앨범 타이틀 곡 ‘늑대가 나타났다’는 사실 세월호에 대한 이야기예요. 근데 지금까지 아무한테도 말 안했어요. 미안한 마음이 있고… 마치 우리가 세월호를 이용하는 것처럼 보이는 건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얘기를 안하고 있었어요.

노진우: 가사 한 번 다시 읽어보시면 아실 거예요.

# 밴드를 시작한 지 20년 전과 비교해 가장 많이 바뀐 건 뭔가요?

노진우: 제일 변한 거는...자신감이 좀 더 생겼나? 옛날보다.

준다이: 넉살?

안경순: 맞아, 넉살.

노진우: 옛날에는 막 좀 틀리면 서로 막 쿠사리주고, 그런 게 있었는데 지금은 좀 틀려도 에휴 그러고말고.

준다이: 주머니는 점점 가벼워지지만 마음의 여유는 점점 늘어나는 것 같아요.

안경순: 큰 의미 없다는 걸 아는 거지. 예전처럼 치열하게 그렇게 해봤자 크게 바뀌는 거 없더라. 차라리 다른 것에서 채워 넣지. 남은 시간도 많이 없는데, 살날도.

노진우: 근데 그러면서 무대에서 더 여유로워졌어요. 많이.

준다이: 나이가 들면 들수록 시간이 빨리 가는 걸 많이 느끼거든요. 그런데 이건 아마도 똑같은 삶이 반복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요. 그래서 레이지본을 하는 한 그렇게 시간이 빨리 가지만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요.

# 음악을 처음 시작한 20년 전 가장 좋았던 점과 20년이 지난 지금 가장 좋은 점을 하나씩 꼽아주세요.

노진우: 처음 레이지본 할 때는 술을 마음대로 먹을 수 있던 것이 제일 좋았어요. 어디를 가나 누구나 다 술을 사줬어요. 어느 가을 주머니에 만원이 있었는데 준규랑 소주 9병에 라면 하나 새우깡 하나 뭐 이렇게 사서 기찻길에 앉아 아침까지 마시면서 “야 우린 언제 술집에서 술 먹냐” 뭐 그런 이야길 했던 적도 있어요. 근데 드럭에 들어가서는 술을 무진장 먹었어요. 말도 안되게 마셨는데 그게 참 좋았던 것 같아요.

안경순: 너도 모르게 민폐를 끼치고 다닌거 아냐?

노진우: 아니야. 그냥 형들이 다 사주고, 누나들이 사주고.

준다이: 어릴 때는 그게 민폐라는걸 인지를 못한 상태로 민폐를 끼치면서 사는거지.

안경순: 하긴. 근데, 뭔가 귀여워해 준 사람들이 많았던 것 같아.

노진우: 어~ 헤비메탈 하는 형들이 엄청 귀여워해줘서, 형들한테 술 엄청 얻어먹고.

준다이: 사실 그 당시 홍대는 음악하는 공간으로 인정 받지 못했어요. 홍대 있는 모든 사람들이 이거는 약간 갑자기 생겨난 음식? 없던 음식이 갑자기 생겼는데, 아무도 이거를 음식으로 취급 안 해주는 그런 느낌? 장난감처럼.

노진우: 펑크?

준다이: 펑크 뿐만 아니고, 펑크가 표면상에 공공의 적처럼 화두가 됐다 뿐이지. 그 당시에 그런지나, 얼터너티브를 위시해가지고 그 주변에 있던 음악들이 동시다발적으로 같이 생겼거든요. 몇 개 클럽이 생기면서 스매싱 펌킨스나 이런 류의 음악을 하는 사람들도 있고. 꼭 너바나가 아니라도 되게 많았는데. 그게 딱 홍대에만 ‘와~!’ 하고 생겼는데, 그 외의 한국의 밴드 신을 유지해왔던 모든 음악인은 인정하지 않았어요. 저것들 음악 제대로 배운 적도 없는 것들이 그냥 한다.

노진우: 배운 거는 지들도 안 배웠는데 뭐…

# 그럼 현재 레이지본으로써 제일 좋은 건 어떤건가요?

안경순: 아니, 그때 20년 전에 제일 좋았던 거는 술로 정리되는 거예요, 그럼? 20년 전에 우리도 밴드가 되었다. 우리가 이제 우리 음악을 시작할 수 있다. 그 기틀이 마련됐다는 기쁨이나 행복이 컸어요. 그중에 술도 일부분으로 들어있고 그런 거지. 술이 1순위는 아니에요. ㅋㅋㅋ

준다이: 예를 들면 힙합에서 얘기하는 어린 나이의 부와 명예, 락스타 같은 것을 우리는 전혀 모르고 있었어요. 그런 걸 생각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우리가 그냥 존나 재밌었던 매 순간이 좋았어요. 그냥 그런 것을 하고 살 수 있었기 때문에 좋았어요. 그때 우리가 만약 롤스로이스 같은 차를 갖고 싶었다면, 오히려 일찍 해체했을지도 몰라요. 답이 안나오니까 빨리 해체하자. 난 그걸 향해 달려가야 돼 이랬을 수도 있잖아요. 근데 전혀 그런 게 필요도 없는 그런 느낌이었어요.

노진우: 형들이 잘해줬어요. 진짜 엄청 잘해줬어요. 노브레인, 너트. 귀여움을 한 몸에 받았어요.

안경순: 아니 무슨??

준다이: 역사를 왜곡하지마.

노진우: 술 마시고 있는데 형님들이 뒤에서 날라차기를 던지고, 막. 귀여움을 한 몸에 받고 살았습니다.

# 이번 앨범에 동물 이름이 많네요. 어떤 동물 좋아하시는지?

노진우: 저 개 좋아합니다. 개 2마리 키우고 있어요.

준다이: 나도 고양이 2마리 키우고 있는데. 근데 고양이를 제일 좋아하는 것 같지는 않아요.

안경순: 뭐, 특별한 이유가 있지 않은 이상, 대다수의 사람들이 모든 동물을 사랑하고 그렇지 않을까요? 하하. 저는 모든 동물을 사랑합니다. 동물을 싫어하는 사람이 어딨어요.

노진우: 안부장 뱀도 여기서 키웠었거든요.

준다이: 뱀, 타란튤라, 개코.

안경순: 요즘에는 장수풍뎅이 4마리를 동시에 키우고 있는데, 성충이 될 수 있을지는 아직 확신이 안 섭니다…

# 20년 동안 ‘레이지본’이란 밴드를 한건데… 혹시 그 사이 밴드 이름 바꾸고 싶었던 적은 없어요?

준다이: 형 있었어?

노진우: 아니. 밴드 이름은… 노브레인으로 바꾸고 싶었어. 하하하.

안경순: 없었던 것 같아요. 밴드 이름을 바꿀 바에는 그냥 밴드를 하나를 더 했지…

노진우: 저도. 그런 게 더 낫지 않을까요?

준다이: 저는 뭐 그런 생각은 해봤어요. 어제 밥 먹다가 회사에 다니고 있는 친구들이 이직 관련된  고민 이야기를 하더라구요. ‘삼성 어디는 구직도 안 떠~’ 이런 것. 그 말을 들으면서 밴드도 어떤 좀 센데서 구직 티오 같은 것 좀 나면 좋겠다.

노진우: 오디오 슬레이브 같은 데서 막.

준다이: 어. 그런 거.

노진우: 우리도 보컬 같은 것도 좀 트레이드하고.

# 취미는 뭔가요?

안경순: 전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장수풍뎅이.

노진우: 저는 자전거를 좀 타보려고요. 자전거 세팅은 작년 크리스마스 때 다 했거든요? 그리고 쫄쫄이도 입어보려고 했는데, 그걸 입고 집을 나서기가 무서워요. 처음엔 쫄쫄이 보이지 않게 그 위에 보드 바지를 입고 나가고 했었는데 되게 창피하더라구요. 불편하고. 그래서 이왕 타는 거 벗고 나가보자 하고 딱 나갔더니, 동네 사람들 다 쳐다보는데….근데 한 번 쫄쫄이에 중독되니 엄청 편하더라고요.

준다이: 저는 하루에 4~5시간은 그거 입고 살아요.

# 음악하면서 나에게 최종목표란?

노진우: 그냥 공연이나 계속했으면 좋겠어요. 많지는 않아도. 많이 할 수 있으면 더 좋겠고.

준다이: 최종 목표가 없는 것 같아요. 왜냐면 단계별로 어딘가를 가기 위한 체크포인트를 생각해본 적이 없었어요. 저희가 되게 1차원적이에요. 올해 뮤콘에 지원을 해서 외국 관계자들을 만나게 됐고, 몇 군데서 좋은 제안을 받았어요. 근데 이런 것도 안 가본 나라에서 공연해보고 싶다는 것일 뿐이지, 뭐 최종 목표를 위해서 넘어야하는 관문이나 요건 같은 걸로 접근하지 않았어요. 올해 사실 20주년 앨범을 만들자 했던 것도, 그런 거죠.

노진우: 아주 좋은 스튜디오에서, 좋은 사운드로 녹음하게 되어서 정말 좋았어요. 5집도 나쁜 스튜디오는 아니긴 했는데, 어쨌든…

준다이: 5집 때는 저희가 홈레코딩을 많이 병행했었어요. 저희 스케쥴이나 스튜디오 컨디션이나 그런 것들 때문에… 그럼 그런 것에서 만족하는거예요. 보통 밴드는 앨범을 내고 만족하는 어떤 포인트가 있잖아요. 근데 우리는 ‘아 이것만 해결되면 좋겠다’라고 생각했던 부분이 되면 엄청 만족해요. 1차원적으로. 지난번에 고생했던 걸 떠올리고 이번엔 그 고생을 안했다거나, 전엔 신경쓰지 못했던 걸 이번에 신경 쓸 수 있게되면 엄청 만족하는거예요. 그래서 최종 목표를 생각하는 건 어떻게 보면 되게 두려운 것 같아요. 그걸 생각하면 아마도 우리는 그걸 향해서 무리를 해서라도 곧장 달려 갈 것 같고, 그걸 이루고… 아마… 어떻게 될까?

노진우: 하루살이가 되겠지.

준다이: 그건 또 그거대로 재밌겠네요. 목표 하나 주세요.

# 이제 계획하고 있는 건 뭔가요?

안경순: 머릿속엔 많아요. 앞으로 할 것들이.

준다이: 레이지본의 최종 목표가 뭐지?

노진우: 세계제패지 뭐.

준다이: 최종 목표보다 중간 목표는 있어요. 평소에 다들 얘기하는. 레이지본 음악으로 윤택한 삶이 유지되는 거.

노진우: 그렇지. 캘리포니아 롱비치 같은 데 앉아 가지고, 맥주 시원하게 마시면서. 그냥, 캘리포니아 로컬밴드들이랑 같이 앉아가지고 농담이나 하면서 서핑이나 하다가.

안경순: 그거는 밴드가 아니라 건물주가 되었을 때 할 수 있는 거 아니야?

노진우: 아니지. 그 동네 로컬 밴드가 될 수도 있는 거지. 전원 캘리포니아로 이민 가자!!

준다이: 거기 가서 직장인 밴드하면 한 명은 피자 만들고, 한 명은 접시 닦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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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진행자 : 노송희, 채연식
영어 번역: 조영국
교정 : 임도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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