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된 날짜 2014년 05월 17일 (토)

기사

인디문화 창조하기

국내 인디 음악 신에 대해 알면 알수록, 당신은 다른 나라 도시의 신과 뭔가 다른 점이 한국에 있음을 느끼게 될 것이다. 음악의 질적 측면이나 양적 측면에선 별반 다른 점이 없다. 공연장의 팬들 역시 뉴욕이나 파리의 팬과 똑같이 열광적이며 우호적이다. 공연장도 세계 다른 곳들처럼 우중충하고 후미졌으나 동시에 매력적이다. 그리고 물론 거기에는 힙스터도 있다. 그렇다면 이건 왜일까?? 도대체 나는 왜 한국 인디 음악에 뭔가 다른 점이 있다라고 느끼게 되었을까?

나는 한국 인디문화 관련자들(뮤지션, 장소/홍보 관계자, 팬)과 대화하기 전까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없었다. 한국 인디 문화에 속한 사람으로서의 그들의 경험, 그리고 거기서 얻어낸 것들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비로소 실마리를 잡을 수 있었다. 나는 이 이야기들을 내가 아는 인디에 전혀 관심 없던 한국인들이 했던 말과 비교하면서 어떤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것은 ‘한국에서 인디 문화에 관심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사이에는 세상을 인식하고 바라보는 커다란 관점의 차이가 있다.’라는 것이다. 보통의 일반적인 사람은 그들이 이해할 수 없는 것들에는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물론 다른 나라에도 독립 문화와 주류인 대중문화를 가르는 차이가 존재한다. 하지만 어느 나라도 한국만큼 그 차이의 정도가 심하지는 않다. 한국의 대중문화는 좋은 것만 보이도록 잘 정제되었으며, 엄격하게 규제되고 관리된다. 때문에 인디 문화의 정신, 자유분방함 혹은 통제되지 않은 그 특유의 특징은 이질적으로 보일 수 밖에 없다. 인디 밴드로서 이런 이질적 분위기를 무너뜨리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훌륭한 음악을 만들어내는 것에 있지 않다. 다만 전문 매니지먼트 팀에게 당신의 모든 것을 바꿀 수 있는 권리를 일임하면 된다. 마케팅 전문 그룹에게 당신이 어떤 모습이 되어야만하는지를 결정해달라고 하고, 자신을 텔레비전 관중들 앞의 소비재로 만들어 다른 모조-인디밴드들과 경쟁하면 되는 것이다. 이렇게 감각을 마비시키는 대중적 ‘불임’ 문화 풍토는 사람들에게 개인 고유의 개성과 창조성을 인정하는 대신, 그것을 ‘틀린 것'이라고 못박아 버리게 한다.

‘이상한 사람들이 괴상한 옷을 입고 낯선 음악을 연주하는 것은 그들 스스로를 표출하는 예술이라 할 수 없어. 그냥 걔네는 미친 것 뿐이고, 틀린거야.’ 이것이 보통의 한국 인의 뇌리에 흐르고 있는 일반적인 생각이다. 락(Rock) 음악이 X로, 재즈가 Y, 팝 음악이 Z라고 정의된다고 해보자. 만약 한국에서 락 음악이 Q처럼 들린다면, 그건 용납될 수 없다. 이러한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사람에게 무키무키만만수나 오대리의 음악은 단지 혼돈이며 이해할 수 없는 것일 뿐이다.

나는 그들의 입에서 ‘컬쳐쇼크’라는 단어가 흘러 나오는 것을 여러 번 들은 적 있다. 하지만 나는 이런 빈곤한 영혼에게 그것 역시 그들이 태어나고 자란 문화의 일부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그게 바로 당신의 문화라니까! 하지만 그건 안될 일인데, 왜냐면 그들의 문화 속에서는 오로지 X나 Y, 혹은 Z만이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그들의 인식체계 안에선 Q라는 문화는 결코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그들은 기이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정신적인 문제가 있다라고 일축해 버린다. 이상한 사람들은 자신들의 정상적인 문화에서 잘라낼 수도 없는 하위 층위에 사는 사람이며, 따라서 그들은 결코 ‘(그들의) 한국'의 일부분으로 인정될 수 없다.

이런 분위기와 환경이 바로 한국에서 인디 뮤지션이나 예술가가 생활하며 겪게 되는 것이다. 그건 마치 누군가가 당신의 목을 조르고 종이를 들이밀면서(거기엔 당신에게 요구되는 행동들이 나열돼 있다) 이걸 반드시 지키야만 숨 쉬며 살 수 있을거라 말하는 것처럼 질식되는 기분이다. 그렇지만 ‘다른' 것을 향한 이런 적대적 분위기에 대한 반작용으로 탄생한 창의적인 집단들이 뭉치면서 주목을 받고 있다. 이들은 공동의 목적을 위해 함께 행동하면서 강한 유대를 형성한다.

‘자립음악생산조합(이하, '자립')’이라고 불리는 음악 집단 공동체가 그 대표적 예다. 자립음악생산조합은(이하 ‘자립’) 그 자체로 갈 곳 없는 예술가들에게 안전한 안식처이자, 규격화되고 정형화된 틀에 맞춰 살라는 사회적 압력에 대한 항거를 상징한다. 이 조합의 회원들은 그들이 지향하는 세계를 현실화하기 위해 자신들의 생각을 알리고, 싸우고, 저항하고, 공연하고, 자금을 조달하는 등의 온갖 다양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자립은 격동기간인 2009년에서 2011년 사이, 서울에서 발생한 각각 두 차례의 대표적인 강제철거에 반대하여 정치적 활동을 벌인 독창적 집단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첫 번째는 ‘용산참사’라고 알려진 사건으로 2009년 1월 20일 발생하였다. 무장한 경찰과 전국철거민 연합회 회원 및 보상정책에 반대하는 철거민들 사이에서 벌어졌으며,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인해 23명의 부상자와 6명의 사상자를 가져온 대참사이다. 이 비극적 사건으로 인하여 강제철거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졌고, 이는 2010 두리반 농성의 시발점이 된다.


야마가타 트윅스터, 음악가이자 자립음악생산조합과 두리반 투쟁의 활동가

2009년 크리스마스 이브, 남전 DNC 소속의 무장한 폭력배들이 홍대역 근처의 칼국수 집 ‘두리반’에 들이닥친다. 이들은 그 근처 땅을 재개발하려는 대형 시공사 GS 건설의 유령회사였다. 이들은 강제적으로 손님들을 쫓아내고 가게 안을 부수는 등 갖은 행패를 부렸다. 다음날 두리반의 주인 안종녀 씨는 총 531일이라는 기나긴 시간으로 이어지는 농성을 시작했고, 끝내 회사를 압박해 홍대 인근에 새로운 가게를 얻기에 합당한 수준의 건물 이전 자금을 받아내는데 성공한다.

농성이 진행되는 동안 홍대 공동체에 속해 있던 밴드/음악가인 노 컨트롤, 밤섬해적단, 아마츄어 증폭기/야마가타 트윅스터, 박다함을 비롯해 수많은 이들이 나서서, 24시간 내내 이어진 두리반 항쟁을 도왔다. 예술과 정치가 혼합된 독특한 공동체적 분위기 속에서 음악가들은 일종의 조합 위원회와 같은 집단을 형성하게 됐고, 이로서 낡고 허름한 두리반 건물은 음악가들이 음악적 활동/투쟁을 열어내는 공간으로 새로운 세례를 받게 된다. 그리고 저항의식에서 시작된 이 작은 공동체는 마침내 2011년 4월 자립음악생산조합으로 거듭나게 된다.

이런 특이한 자립의 이력은 이 단체의 성격과도 일맥상통한다. 두리반 항쟁은 믿기지 않을 정도로 근사한 음악 축제인 51+ 페스티발을 탄생시켰다. 자립은 매해 51+를 연다. 이것은 두리반의 거대한 저항 축제에 참여했던 51명이 넘는 뮤지션들을 기억하기 위함이다. (맨 처음에는 51명의 뮤지션들로 계획되었다. 하지만 후에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게 됐고 그렇기 때문에 +기호가 붙었다.) 만일 당신이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하나같이 끝내주는 공연을 놓치지 않으려고 이방저방을 뛰어다니면서 미칠듯한 감각의 과부하를 겪게 될 것이며, 또 이 모든 것들이 동시에 훅하고 지나가버리는 것에 한탄하게 될 것이다. 51+페스티발의 모든 공연은 ‘저항'의 테마를 갖고 있다.


문래예술공장에서 열린 2013 51플러스 페스티벌(지하 무대)에서 공연 중인 서교 그룹 사운드

만일 당신이 펜타포트 음악축제나 안산 페스티발에 참여하면 분명히 그곳에서 아주 근사한 밴드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또 확실한 것은 당신의 그 행위가 주요 거대 자본의 이익에 기여한다는 점이며, 예술가로서 획일화된 문화생산에 저항하는 다양한 사람의 활동을 어렵게 만들기도 한다는 것이다. 물론 라디오헤드는 진짜 멋지다. 하지만 당신은 혹시 쾅프로그램이란 밴드의 공연을 보신 적이 있으신지??? 51+에서 당신은 혁명적 기운과 중요한 대의가 감지되는 어떤 분위기 속에서, 예술가가 그들의 정당한 대우를 받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지난번 51+ 페스티발이 열린 문래의 공연장은 ‘콜트콜텍에 반대한다’는 문구들로 그 입구가 꾸며졌다. 콜트콜텍 기타 제조사는 부당하게 이득을 취하고 노동자를 탄압하여 고소 당한 기업이다. 이처럼 자립은 예술가의 이익을 위해 일할 뿐만 아니라 사회의 점진적인 변화를 지지하는데 책임감을 갖고 행동하고 있다.

자립에서 가장 주목되야 할 측면 중 하나는 그들이 팬-장소-공연기획자-밴드-프로듀서로 각각 분리돼 일하던 전통적 관계를 어떤 식으로 좀더 유연하고 다이나믹하게 바꾸었는가하는 것이다. 이 조합의 일원은 팬이 될 수도 있고, 공연 기획자, 밴드 혹은 프로듀서가 될 수도 있다. 또 심지어는 이 모든 것들을 혼자서 다 할 수도 있는데 이런 독특한 구조는 이 집단에 힘을 더해주고 있다. 집단 일원이 각자의 역할을 해나감으로서, 이 집단이 나아가고 있는 방향은 그 자체로 인디 음악을 대표하고 있다. 누구나 자립의 일원이 될 수 있다. 조합에 가입하는 유일한 자격조건은 독립적이며 창조적인 커뮤니티에 적극적인 참여와 지지를 약속하는 것 뿐이다. 200명이 넘는 예술가와 홍보 및 장소 관련자, 기술자 그리고 팬이 자립의 이런 신념에 동의하며 조합의 일원이 되었다.

자립이 해나가야 할 일들은 조합 내 운영위원회에서 정해진다. 이 위원회는 뮤지션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대부분이 ‘두리반’ 출신이다. 이들은 그들이 지지할 어떤 명분을 결정하고 자립이 나아가야할 기본 방향을 설정한다. 자립에서 함께 다뤘으면 하는 이슈가 있다면 어느 조합원이라도 운영위원회에 제안하고 그것에 관해 토론할 수 있다.


2012 51플러스 페스티벌에서 공연 중인 SSS - 자립음악생산조합의 공연장인 대공분실

아마 자립의 궁극적인 목표는 독점적인 음악생산과정을 확보해내는 일일 것이다. 젊은 뮤지션이 이 집단에 들어와 경험 많은 선배 뮤지션이 하는 강의나 세미나에 참석하는 등 여러가지를 배우고 훈련 받아, 조합 소유의 무대 위에서 조합의 콘서트를 여는 것. 그리고 나아가 조합 소속의 기술자들과 함께 앨범의 형태로 된 음악적 결과물을 생산해내는 것이다. 새로운 뮤지션이 들어오면 이 순환과정이 반복될 것이다. 이것이 그들이 꿈꾸는, 새롭고 창조적인 음악(비록 조금은 이상하고 실험적일지라도)을 길러내는 방법이자, 자립이 여타의 다른 단체들과 구분될 수 있는 점이다.

사실 일각에선 자립이 너무 배타적이며 오로지 소속 멤버들의 이익을 위해서만 일한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전체적인 그림을 놓치는 국소적인 논쟁일 뿐이다. 한국은 (그리고 점점 더 많은 다른 나라들도) 인디 뮤지션이 그들의 음악으로 적당한 생계를 꾸려가면서 음악 씬에 지속적으로 기여할 수 있을만한 상황이 못 되는 열악한 곳이다. 따라서 나는 자립 음악가의 생각에 반대하는 이에게 묻고 싶다. 만약 인디 뮤지션들이 오로지 개인적 성공만 쫓아가는 이기적인 길만을 택한다면, 인디 음악 신은 어떻게 될 것인가? 그렇게되면 결국엔 다른 모든 인디 뮤지션이 어떤 값을 치러내야만 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만일 인디 뮤지션이 대형 기획사나 전문 매니지먼트 팀과 손잡는 문화에 편승한다면, 그들도 자멸적인 시스템에 암묵적으로 동의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라 할 수 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좋든 싫든 우리 모두는 서로에게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자립은 완벽하지 않다. 조합원은 실수를 할 수도 있고, 때로 사소한 논란거리들도 발생할 수 있다. (2013 51+ 페스티벌에 Kuang Program 밴드 소개를 보시길) 하지만 이 조합의 근저에 흐르는 개념은 세계의 어느 음악 씬을 미루어 봐도 주목할만한 가치가 있는 아주 중요한 아이디어 중 하나이다. 자신을 둘러싼 환경과 문화 요소들 그 어느 것도 당신을 돕지 않는다면, 이제는 뮤지션들이 스스로 그들을 도울 때다. 공동의 목표를 향해 함께 나아감으로서 우리는 창조적이며 다양성을 존중하는 문화를 피워낼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자부심 가득한 목소리로 선언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자립이다’라고.

자립음악생산조합에 대한 더 많은 정보를 원하거나 자립음악생산조합의 일원이 되고 싶다면,

공식 사이트 : http://jaripmusic.org/
트위터 계정 : http://twitter.com/jarip_musician
페이스북 페이지 : https://www.facebook.com/jaripmusic
페이스북그룹 : http://facebook.com/groups/341673129212128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Written By: Alex Ameter
Translation By: 안아영 (Ahyoung Ahn) / 임도연 (Doyeon Lim)

알렉스가 쓴 다른 글들도 읽어보세요.

«이전 기사

다음 기사 »

Comments

comments powered by Disq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