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된 날짜 2017년 05월 29일 (월)

플레이리스트

무더운 5월 말의 어느 날. 플레이 리스트 주제 선정을 하기 위해 연락을 주고받던 두인디의 두 에디터는 2017년이 절반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깨닫게 되고. 그리하여 6월 플레이 리스트의 주제는 '반(half)'이다. 새해라는 이름이 무색해진 6월이지만, 연초에 세웠던 목표를 새삼스럽게 떠올려본다. 미루지 않고 일기 쓰기, 꾸준하게 운동하기, 절주하기,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기 등등. 작심삼일은커녕 다짐은 흔적조차 남지 않은 게 대부분이다. '그때 그럴걸', '그때 그러지 말걸'을 번갈아 후회하다 보니 벌써 6월. 어찌어찌 무언가 하면서, 열심히 산 것 같기도 한데 왜 항상 부족하고, 모자란 것 같은지. 그래도 어찌어찌 6개월을 잘 보냈으니, 남은 6개월도 어찌어찌 잘 살 수 있지 않으려나. 창대한 목표는 거두고 그냥 별일 없이 또 잘살면 되는 거지라는 생각이 드는 6월. 봄과 여름 사이에서 두인디 멤버들은 어떤 '반'의 노래를 떠올렸는지 소개해본다.


[이규호 - 이사분기]

팬들이 “빨리 안 나와도 좋으니, 제발 나와만 주세요ㅠ”라고 하는 것들이 몇 가지 있다. 만화로 예를 들면 ‘헌터x헌터’라던가 ‘베르세르크’같은 것이 있고, 음악에서는 미국의 소울가수 Remy Shand가 훌륭한 데뷔앨범을 내고 사라져버려서 기다리다 못한 팬들이 Where’s Remy Shand?라는 홈페이지를 만들기까지 했다. 한국에서는 한동안 이규호가 Remy Shand와 같았다. 1999년에 1집을 발표한 뒤 15년이나 두문불출하게 음악활동을 하였다. 오늘의 추천곡인 이사분기는 2000년 Dream Factory의 컴필레이션 앨범 "Long live dreamfactory"에 수록된 곡으로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정서를 발랄한 가사와 이사분기라는 단어에 담아냈다.  이 소개글은 6월에 올라가겠지만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5월이다. 함께 이사분기를 들으며 오뉴월을 느껴보자. - 김민집


[Tame Impala - Half Full Glass Of Wine]

2008년에 발매된 곡이지만 1968년에 나온 듯한 현대판 싸이키델릭 락. 곡 분위기는 밝으나 정작 가사를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다. ‘애인이 집에 일찍 들어온다고 해 놓고선 밤 12시가 넘도록 오지 않는다. 그냥 포기했다. 내 곁에 있는 유일한 친구는 혼자 홀짝홀짝 따라 마시던 와인잔뿐. 아, 애인의 손을 잡아본 지도 좀 됐다’. 찌질하고 솔직해서 좋은 가사다. 내가 무슨 망부석도 아니고 이렇게 마냥 기다리기만 하다니! 라고 불만을 토로하는 듯, 굵고 두터운 사운드가 한꺼번에 터져나온다. 크로마키 기법으로 제작된 뮤직비디오의 초현실주의적인 느낌도 훌륭하다. - 한예솔


[화나(FANA) - 데칼코마니(feat. 바버렛츠)]

내 나이의 절반을 자르면 초등학생 나이가 된다. 그 때만 해도 철없이 미술 시간에 스케치북의 반쪽에 물감을 쭉 짜고 난 후 반을 접어 나비를 완성시키고는 재미있다고 꺄르르대곤 했다. 이 곡은 서로의 시간을 공유하며 닮아가는 연인의 모습을 데칼코마니로 표현한 곡이다. 아직 결혼 적령기에는 한참 못미치는 나이이지만 가끔 미래 결혼에 대한 생각을 하곤 하는데, 아름다운 예술 작품의 데칼코마니를 완성시킬 수 있는 좋은 사람을 만났으면 한다. 곡이 감성적인 만큼 나도 감성적인 척을 해봤다. :) - 곽혜민


[허클베리 핀 - 쫓기는 너]

나이 먹을수록 시간이 빠르게 흐른다고들 한다. 올해는 그 어느 때 보다도 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갔다. 너무 정신없이, 치열하게 살다 보니 어느덧 2017년의 절반이 사라졌다. 나한테 뭐가 남았나 돌이켜보니 꽃구경과 소풍의 행복한 추억은 온대간대 없고 스트레스와 피로만 잔뜩 쌓여있었다. 대체 뭐에 그렇게 쫓기듯 하루하루를 보낸지 모르겠다. 조용히 제주도로 가서 스쿠터 타고 해안도로 한바퀴 돌고싶다. 이렇게 안 하면 조만간 내가 녹아내릴 것만 같다. - 이주빈


 [토끼사냥꾼 - 드라마]

2017년 1월 1일을 기억한다. 새해가 온다는 것에 무심하려고 애쓰면서도, 다짐을 몇 개 했다. 몇 개는 이루어진 것도 있지만, 대개 그러지 못했다. 애초에 목표가 너무 컸다거나, 내가 그만큼 노력을 안 했다거나. 무언가 하고 있는데, 무언가 계속 빼먹은 것 같고, 그냥저냥 괜찮은 것 같은데 또 완전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지친다거나 힘들다는 상투적인 말을 상투적으로 하는 요즘. ‘내 인생은 드라마 but bad ending, 이런 것을 생각한 건 아닌데. 내 인생은 드라마 but sad ending 슬픈 드라마의 주인공은 싫어요.’ 가사가 남 얘기 같지 않았다. 2017년 남은 절반에서 난 어떤 모습일까. 짐작도 가지 않지만, 가사처럼 조금은 덜 슬픈 이야기였으면. - 김한솔 


 [골든두들 - round robin]

‘반’이라는 개념, 혹은 ‘반’으로 표현될 수 있는 상태에 대해 생각하다 보면 어렸을 적 교과서가 떠오른다. 교과서 속에서 아이들은 컵에 남아 있는 물의 양에 대해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그들은 절반가량 차 있는 양의 물을 보며 ‘컵에 물이 반밖에 없네.’라고 생각하는 것은 나쁜 것이며, ‘컵에 물이 반이나 있네.’라고 생각해야 건강하고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가질 수 있고, 더 나아가 올바르고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는 것처럼 이야기한다. 마치 조악한 공익광고와도 같은 이 이야기가 아직 교과서에 실려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의 교과서에는 모호한 ‘절반’의 상태를 존중해주었던 아이는 없었던 것 같다. 봄을 사랑하고, 새벽을 즐기며, ‘모호함’으로 수렴되는 다양한 것들과 살아갈 수 있는.  - 채연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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