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된 날짜 2017년 09월 15일 (금)

플레이리스트

이번달 플레이리스트 주제는 ‘천고이비; 귀가 살찌는 음악' 입니다. 낮고 구름많던 하늘은 점점 높아져가고 해가 뜨는 게 아쉬울 만큼 짧았던 여름밤은 이제 슬슬 길어집니다. 낙엽 떨어지는 가을, 눈발이 날리는 겨울이 다가올수록 우리는 차분해지겠지요. (과연?) 어떤 곡을 들을 때 우리는 밥을 먹지 않아도 배부른 듯 편안한 포만감을 받습니다. 장르를 불문하고 우리의 몸과 마음을 풍요롭게 하는 음악이 있다는 것은 삶의 큰 축복일 겁니다. 내 귀를 기름지게 만들어주는 사탕같은 음악! 무엇이 있을까요?

1. 장기하와 얼굴들 - 쌀밥

쌀밥을 필두로 한 장조림, 김구이, 된장찌개, 굴비, 간장게장, 명란젓, 창난젓 등 먹음직스러운 반찬을 듣고 있으면 배가 불러오긴커녕 허기가 몰려온다. 쌀밥을 먹어본 게 언제였지. 자문해보면 잘 기억도 나지 않는다. 노래로나마 한 상 잘 차려진 밥상을 먹는 것도 좋지만, 아무래도 밥도 잘 챙겨 먹어야겠다는 지키기 힘든 다짐을 또 해본다. 다만 당분간은 쌀밥을 들으며 귀라도 살찌워야겠다. - 김한솔

2. 마멀레이드 키친 - 핫쏘스 (feat. 차이)  

바삭바삭 토스트 아홉 조각 오븐에 넣어서 오분만 딱 기다린다. 휘핑크림 빙빙빙 휘감아서 시나몬 파우더 솔솔솔 잘 뿌린다. 갓 구워져 나온 허니버터브레드 한 조각을 위에 올려진 휘핑크림에 찍어 입 속으로 넣는 상상을 해 본다. 앞에 두 문장은 다름이 아닌 이 노래의 가사다. 노래 자체가 열심히 요리를 해서 완성된 요리를 선물하며 고백을 한다는 내용인데 가사 속에 음식을 만드는 과정이 너무나도 세세해서 마치 내가 요리를 한다는 느낌이 들게 만든다. 또한 보컬의 음색은 얼마나 맑고 청아한지…! 그러니 바삭한 허니버터브레드와 신선한 샐러드를 귀로 야무지게 먹으며 살이 쪄 보자. - 곽혜민

3. 우리는 속옷도 생겼고 여자도 늘었다네 - 버려진 청춘 

9월이 되면 마음 한켠이 서늘해지는 느낌을 받게 된다. 집 밖으로 나서자마자 맡을 수 있는 초가을 공기의 냄새, 양 팔과 다리 그리고 뺨에 스치우는 바람의 -어제보다 약간 낮은- 온도. 계절이 바뀌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잔인하고도 정확한 지표들이다. 초가을의 향기를 맡고 설레기도 하지만 한편 무언가 아쉬운 맘에 가슴이 뻐근해질 때가 있다.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곤 하는 누군가라면, 그런 날에는 길을 걸으며 속옷밴드의 ‘버려진 청춘'을 들어 달라. 몽환적으로 차곡차곡 쌓이는 달콤쌉싸름한 슈게이징 기타 소리로, 폭포처럼 쏟아지며 거대한 장벽을 이루는 노이즈로, 가끔 울고 싶은 마음을 어루만져 주고 또 투정도 받아주는 곡이다. 이런 계절이면 당황스럽게도 평소에는 별것 아니었던 고민과 걱정들이 갑자기 벌떡 솟아나 서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머릿속을 빙빙 맴돌곤 한다. 헌데 생각이 너무 많은 것은 득이 아니라 독이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를 때는 우선 나에게 음악을 배불리 대접해 주자. 그리고 그 곡을 듣는 동안만큼은, 그냥, 잠시 쉬자. 뇌가 아닌 귀를 그득하게 채워줄 때 꾹꾹 눌러담겨 있던 더부룩한 잡생각들이 상쾌하게 소화될 수도 있으니. 만약 눈물이 난다면 그냥 흘려도 된다. - 한예솔

4.잔나비-뜨거운 여름밤은 가고 남은건 볼품없지만

매년 여름이 되면 최고의 폭염이었다는 기사가 올라오고 올 여름이 내 생애 제일 더운 여름인것 같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면 얼마나 더웠는지도 기억이 희미할 정도로 어느새 가을이 성큼 다가온다. 우리의 사랑도 이것과 비슷한거 같다. 사랑이 불타오를때에는 내 생애 최고의 사랑인것같지만 그 또한 끝이 있고, 시간이 지나고 보면 그저 여러 사랑 중에 하나였던 것 처럼...

딱히 내가 지난달에 여자친구와 헤어져서 이런 글을 쓰는 것은 아니다. - 김민집

5. 네임텍 - 담배하나만 

땀을 뻘뻘 흘리며 텁텁한 공기를 연신 들이켜야지만 즐길 수 있는 여름 담배나, 얼어붙을 것 같은 손을 제물로 바치면서 ‘아, 이렇게까지 담배 펴야하나’ 생각이 들정도로 괴로운 겨울 담배나, 무언가 새로 자라나는 생명들에게 잘못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드는 봄 담배에 비교하자면- 가을에 피는 담배는 맛도 분위기도 일품이라 할 수 있다.
가을의 적당히 맑고 차가워진 공기와 함께 들이키는 담배 연기는, 똑같이 몸에 나쁜 것임이 분명한데도 왠지 모르게 폐부가 깨끗하지는 느낌이다. 길 위에 널부러져 연신 바스락대는 낙엽 소리는, 담배가 조금씩 타들어가며 내는 소리와 함께 어우러져 우리에게 줄담배를 권할지도 모른다. - 채연식

6. 메쏘드 - existence to nonextistence

요즘, 락이 많이 고파졌다. 평소에도 거친 사운드에 배고파하는데 문제는 요즘 들어 이 허기짐을 채우기가 어려워지고 있어서 큰일이다. 락페스티벌에 가면 해소되겠지 싶어서 가면 하드코어/메탈 밴드들은 작은 무대에, 그것도 관객이 많이 없는 정말 이른 시간에 가야 만날 수 있다. 이런 곳에서는 포만감을 느끼기 어렵고 오히려 아쉽기만 하다. 어쩔 수 없다. 내 방에서 두꺼운 패드가 장착된 헤드폰을 머리에 두르고 락페스티벌급으로 볼륨을 높인 채로 혼자 머리를 흔들 수 밖에. 귀는 아파도 배가 부르면 그걸로 만족한다. 락앤롤 lml - 이주빈


Comments

comments powered by Disq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