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된 날짜 2017년 04월 25일 (화)

기사

바야흐로 페스티벌의 계절. 내가 옛날 옛적부터 돈이 많고 많아, 문화생활을 아무 고민 없이 즐길 수준이었다면야, 과연 서포터즈를 시작했을까? 가장 좋은 자리 척척 사서, 친구도 너덧 즈음 불러 신명나게 놀았겠지만. 애석하게도 매번 몇만 원에서 몇십만 원이나 하는 티켓을 과감하게 사지 못했다.

어쩌면 ‘꼭 돈을 내지 않고도 페스티벌을 즐기고 싶다’는 치기 어린 생각에서 시작한 서포터즈가 하나둘 늘더니 스무 번이 넘었다. 산전수전 다 겪으며 느끼게 된 진짜 페스티벌 서포터즈 이야기. 대부분 사람이 잘 몰랐던 이야기. 여러 번의 경험에 더해, 올해 1월부터 3월 중순까지 받은 설문, 제보 등을 통해 익명의 제보자, 지인, 친구들에게 들을 수 있었던 이야기를 솔직하게 해보려 한다. 그전에, 페스티벌 서포터즈에 대해 많은 사람이 궁금해한 질문과 그에 대한 답변을 먼저 적어보았다. 미리 알려주자면, ‘공짜로 공연도 보고, 코앞에서 가수도 보고, 돈도 벌면서, 경험을 쌓는 건 물론 인맥까지 두둑해질 수 있다’는 건 이상이나 극락세계에서나 가능하다는 사실.


1. 서포터즈? 자원봉사? 기획단? 무슨 차이지?

이름만 다를 뿐 하는 일은 비슷한 경우가 많다. 걔 중에선 기획단이 약간 느낌이 다르다. 기획단의 경우 직접 페스티벌 관련된 프로그램, 홍보, 운영 등을 ‘기획’하고 직접 실행한다. 물론 실행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앞서 말했듯, 서포터즈, 자원봉사, 기획단 이름 가릴 것 없이 현장에서 페스티벌 운영과 관련된 일 일체를 하는 게 보편적이다.

2. 서포터즈가 되는 방법은?

활동 기간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행사가 시작되기 한 달에서 두 달 즈음 전부터 서포터즈 모집 공고가 올라온다. 공식 홈페이지나 SNS에 주로 게시가 되는데, 공모전이나 대외활동 모음 사이트에 정리가 돼서 올라오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역시 가장 좋은 방법은 해당 페스티벌 공식 사이트를 예의주시하는 것. 대개 일정이 매년 비슷하므로, 서포터즈를 뽑는 기간도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전형은 지원서(자기소개서)로만 뽑는 경우가 많지만, 가끔 면접까지 보는 곳도 있다.

3. 그래서 무슨 일을 한다고?

정말 다양한 일을 한다. 난 이제껏 게이트 입장 검사, 현장 촬영, 객석 안내 및 관객 동선 관리, 백스테이지 케이터링, 아티스트 주차장 출입 관리, 연사 의전, 티켓-팔찌 교환, 열기구 행사 관리, 자원봉사자 관리(팀장), 속기, 부스 운영, 온/오프라인 행사 홍보 등의 일을 해봤다. 이 외에도 프레스 관리, 입장 관리, MD 상품 판매, 물품보관소, 안내소, 텐트 존 관리 등등 페스티벌이 돌아가는 데 필요한 곳곳에서 일하게 된다.

4. 보통 얼마나 하는데?

기간도 역시 천차만별. 짧은 것은 페스티벌 당일과 전날 교육까지 이틀이면 끝나는 것도 있고, 기획/홍보와 더불어 페스티벌 전반적인 것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1~6개월가량 활동하는 경우도 있다. 서포터즈의 성격에 따라 다르다.

5. 공짜로 공연 볼 수 있어?

너무 당연한 말이지만, 페스티벌과 서포터즈에 따라 다르다. 무대는 코빼기도 안 보이는 아티스트 출입 주차장에서, 쉬는 시간이라곤 식사시간밖에 안 주는 담당자를 만나면 저 멀리서 들리는 아득한 노랫소리만 들을 수도 있다. 스테이지 관리, 혹은 무대가 잘 보이는 곳에 배정이 되면 일도 하고 무대도 볼 수 있다. 다만 신분이 신분인지라, 다른 관객들처럼 바운스를 탄다거나 과감히 손을 휘젓거나 호응을 하는 것에는 당연히 제한된다.

6. 공연도 못 볼 수도 있다고? 그럼 왜 하는 거야? 뭘 주는데?

비표 목걸이, 티셔츠, 수료증, 식사 제공 정도가 기본이다. 비표 목걸이와 티셔츠는, 서포터즈로 활동하면서 착용하게 된다. 자신이 일반 관객과 다르다는 것을 가장 쉽게 체감할 수 있다. 거기서 오는 묘한 뿌듯함, 서포터즈란 이름으로 함께한다는 소속감,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멋있는 (단체) 사진 정도를 얻을 수 있다. 또 행사가 끝나면 티셔츠를 집에서 잠옷으로 애용할 수도 있고. 수료증은 별것 없다. ‘얘가 이런 데에서 활동을 잘했다’는 종이를 준다. 이외에도, 봉사활동시간, 소정의 활동금, MD 상품, 다음번 페스티벌 티켓 등을 주기도 한다. 역시 안 주는 경우도 많고.


생각했던 것과 달라서 놀랐다고? 자, 아래부터는 페스티벌 서포터즈 유경험자들의 진짜 이야기이다.

‘우리가 만든 영상은 어디로 갔을까’ (C 페스티벌) - A 씨 (서울시 도봉구/20대 여성)

2년 전에 아프니까 C 페스티벌 기획단을 했어요. 업계에선 이미지도 좋고, 단체 티도 예쁘고, 사람들도 좋은 것 같아서 여러모로 맘에 들었어요. 페스티벌 홍보 기획 발표가 있었는데 저희 조 아이디어가 채택됐어요. 삼 주가 넘도록 고생하면서 만들었던 거라 되게 뿌듯했죠. 장소 섭외도 하고, 촬영도 하고. 지하철역에 서서 김밥이랑 주스 먹으면서 고생했어요. 페스티벌 전에 홍보 영상으로 쓰인다고 했거든요. 그게 2015년 5월 이야기에요. 2년이 넘도록 영상은 안 올라왔어요. 왜 안 올리는지 물어봤냐고요? 몇 번이고 말했는지 몰라요. 편집본은 안 줘도 되니, 그냥 영상 소스라도 달라고. 저희는 정말 열심히 준비했고, 어떻게 찍혔는지 궁금했거든요. 우리끼리 내부적으로 편집해서 만들어보자는 이야기도 있었고요. 편집하려면 예산이 든다, 어디에 있는지 찾아봐야 한다, 나중 페스티벌 때 홍보 영상으로 쓰겠다. 말은 번지르르했어요. 그럴 거면 약속을 하지 말던가. 맘 같아선 그 홈페이지 알려주고 싶네요. 직접 그 동영상이 있는지 없는지 확인들 해보시라고. 다른 이야기도 하고 싶은 게 엄청 많지만…….

‘페스티벌에 눈을 뜨게 된 날’ (P 페스티벌) - C 씨 (서울시 동작구/20대 남성)

전역하고 나서 할 게 없어서 난생 페스티벌 서포터즈를 해봤어요. 집에서 행사장까지 좀 멀었어요. 지하철 타고 왕복 세 시간은 걸리는 거리였는데, 할까 말까 고민하다 그냥 했어요. 담당자분도 잘하고 있다고 격려해주시고, 경호원분들도 잘 대해주시고. 쉬는 시간에는 공연도 볼 수 있고. 엄청나게 좋다 그런 건 아니었지만 나름 괜찮았어요. 더 좋았던 건 활동 시간이 끝나면 손목 팔찌를 주고, 자원봉사 티셔츠 벗고 놀게 해줬거든요. 온종일 고생했으면서도, 진짜 온 힘을 다해서 놀았어요. 막 소리 지르고, 슬램도 하고. 온몸이랑 옷이랑 땀 범벅돼서 무슨 걸레 냄새도 나고, 모기도 엄청 물렸는데. 정말 너무 힘들었지만 그만큼 기억에 많이 남는 것 같아요. 그 이후로 페스티벌도 찾아보고, 가기 시작했죠.

‘가족 같은 분위기라고 말은 들었지만……’ (J 페스티벌) - P 씨(경북 경주시/20대 남성)

친구 중에 페스티벌 서포터즈 같은 거 많이 해본 애가 있었어요. 걔한테 얼핏 들었는데, 되게 좋다고 하더라고요. 분위기도 좋고, 서포터즈 중에는 대우도 좋다고 하고. 가족 같은 분위기! 정말 그랬어요. 서포터즈를 여러 번 한 사람이 많아서, 다들 아는 분위기더라고요. 페스티벌 담당자와 호형호제하는 건 물론이고, 테이블을 돌면서 인사를 하는 사람도 많고. 친구가 이번에는 자원봉사자 팀장을 했는데, 자기도 더 느꼈다고 하더라고요. 너무 친한 사람들끼리만 친하고, 1년 차들은 친해지기 어렵다고. 서포터즈를 오래 한 사람은 일을 잘 못하고 안 해도, 그냥 뽑혀서 하는 경우도 수두룩하고.

또 되게 웃긴 게, 예전에 서포터즈 했던 사람들이 관객으로 오는 경우가 있잖아요. 근데 서포터즈들이랑 같이 놀아요. 노는 건 문제가 안 되죠. 서포터즈들만 쉬는 곳에 와서 짐을 두고, 스태프, 아티스트들 다니는 뒷길로 다니고 그런 게 문제지. 근데 친구가 그러데요. 그래도 여기가 제일 낫다고. 그래서 그때 생각했어요. 이게 처음이자 마지막이겠구나.

‘사과 주스’ (W 페스티벌) - L 씨 (전북 전주시/20대 여성)

되게 덥고 힘들었어요. 많이는 아니었지만, 페스티벌 서포터즈를 몇 번 해봤거든요. 그때마다 운이 좋아서 그랬는지 별로 힘든 적이 없었는데. 이번에는 걸린 게 하필 게이트 관리였어요. 팔찌 확인하고 물품 검사하고, 반입 안 되는 건 안 된다고 말하고. 반입금지라고 하면, 대부분은 먹고 오거나, 그냥 맡기거든요. 근데 빡빡 우기는 사람도 꼭 몇 명 있었어요. “팔찌 보여주세요. 팔찌 한 번씩만 보여주세요. 팔찌 한 번만 보여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를 입에 달고 있으면서 땡볕에 몇 시간을 서 있으니 엄청 지치더라고요. 간혹 있는 진상도 정말 질색이었고. 거기 회사 사람은 언제 봤다고 반말인지 모르겠고.

대기 줄이 길어져서 그걸 관리하러 잠깐 간 적이 있었어요. 입장이 조금 늦춰진다고 관객들에게 안내해주고 있는데 어떤 여성분이 사과 주스 얼린 걸 주시는 거예요. 저 먹으라면서. 엄청 감사하더라고요. 어떤 아티스트 무대보다 그게 제일 기억에 남아요.

‘내 인생 최악의 페스티벌’ (K 페스티벌) - P씨(서울시 성동구/20대 여성)

만약에 여기서 서포터즈를 한다는 사람이 있으면 도시락 싸 들고 다니면서 말리고 싶어요. 제가 이런 경험이 많은 건 아니지만, 단연 최악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전교육 때 정해진 역할이 페스티벌 당일 몇 분 만에 초기화되더니, 다시 배정되었습니다. 거기 대장이란 사람은 주머니에 손 넣고 건들건들 돌아다니는 건 기본이고, 관객들, 서포터즈들 다 있는데 핸드폰에 대고 우렁차게 욕을 하더라고요. 회사 사람들은 저희를 부를 때 ‘야, 알바’라고 반말을 했고요. 음식물 반입이라든지 규정도 이 사람 저 사람 말이 다 다르고. 한 장에 5만원이 넘는 티켓을 ‘티켓 4장과 포스터가 단돈 2만 원!’이라는 파격 구성으로 둔갑해 저희한테 팔아오라고 시키기도 했어요. 실제로 시내 가서 사람들한테 표를 팔았고요. 그러면 5만 원 넘게 돈 주고 오는 사람은 뭐가 되겠어요. 마지막 날엔 뒤풀이랍시고 다 식은 닭꼬치랑 소시지랑 맥주 주더라고요. 조명도 없는 그 황량한 페스티벌장에 플라스틱 탁자랑 의자만 두고. 거기 회사 사람도 ‘페스티벌 망했다’고 하더라고요. 근데 진짜 그랬어요. 전 그렇게 사람 적은 페스티벌 처음 봐요. 올 스탠딩이었는데, 맨 뒤에서도 아티스트가 어찌나 잘 보이던지.


상상과는 다르다고? 그럼에도 내가 몇십 개가 넘는 페스티벌을 다니며 서포터즈를 했던 이유는 분명 서포터즈만의 매력이 있기 때문이다. 정말 고생한다면서 빵이나 귤을 건네주시던 분, 들어오고 나갈 때마다 웃으시며 고맙다고 인사해주시는 분, 교육을 정말 잘 받았다며 칭찬해주시는 분, 우리 덕분에 페스티벌을 잘 마쳤다고 말씀해주시는 담당자분, 지금까지도 연락하고 만나는 소중한 사람들, 그리고 ‘그때 그 자리에서만’ 할 수 있는 다양한 경험들. 이상과 현실은 분명 다르지만, 관객이 아닌 서포터즈로 페스티벌을 경험해보는 건 분명 값진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서포터즈를 지원해보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너무 큰 기대는 버리는 게 좋을 것 같다. 서포터즈는 페스티벌 자체를 즐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페스티벌을 즐기러 온 사람을 위해서라는 것. 그리고 심신이 무척 힘들다는 것.

서포터즈를 구하는 페스티벌 업계에서도 조금 더 기본적인 것을 충실하게 지켜줬으면 좋겠다. 서포터즈는 분명 페스티벌을 위해서 존재하지만, 막 부려도 될 사람은 절대 아니라는 것. 누구 집 귀한 아들, 딸들은 반말을 듣고 삿대질을 받기 위해 돈도 안 받고 축제 현장에서 뛰어다니는 게 아니다. 준다고 약속한 게 있으면 주고, 제 역할을 다하는 서포터즈는 충분히 존중해주었으면 한다. 모집 공고에는 준다는 것도 많고, 함께 축제를 만들어나갈 것처럼 써놓고는 막상 현장에서는 그러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서포터즈는 절대, 절대로 ‘을’이 아니다. 함께 축제를 꾸려가고 만들어갈, 없어서는 안 될 사람이다.

많은 서포터즈가 뛰어다닐 페스티벌 시즌이 코앞이다. 서포터즈는 본분을 망각 않고, 공연과 관객을 위해 맡은바 최선을 다해주길. 그리고 담당자들은 그런 서포터즈를 충분히 대우해주길 바란다. 당연한 말을 왜 자꾸 하느냐고? 당연한 걸 당연하다는 듯이 안 지키는 사람이 너무 많으니깐.


글쓴이: 김한솔
영어 번역: 패트릭 코너 & 임도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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