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된 날짜 2019년 03월 15일 (금)

인터뷰

 

[사랑가]와 [혁명가], [방랑가]라는 3개의 트릴로지 정규앨범을 내놓은 ‘전범선과 양반들'은 리더 전범선의 입대로 잠시 활동을 멈췄다가 재개했다. 다양한 장르를 포섭하는 로큰롤 음악 스타일 외에도, 상투 틀고 한복을 입고 노래하는 등의 한국적 스타일이 가미되어 한번 보면 잊기 어려운 팀이다. 겨울 해방촌에서 두인디는 ‘전범선과 양반들’의 전범선을 만나 그의 다양한 문화 프로젝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음악적으로 밴드는 곧 발매될 완전히 새로운 스타일의 앨범을 준비하고 있고, 그 외에 다큐멘터리 제작, 출판사와 헌책방, 사찰 음식점 운영 등의 활동을 전개중이다. 한국 대중음악에 대한 견해와 고민, 역사관에서 확장된 새로운 시도를 왕성히 펼치는 쇼맨 전범선을 만나보시라.


# 우선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전범선: 저는 ‘양반들’이라는 악단을 하는 전범선이고요. 그 외에 많은 음악, 예술 사업을 벌이고 있습니다.

 

# 군 제대 하시고 활발하게 활동하고 계신데요. 요즘 하고 계신 일들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부탁드려요.

전범선: 일단 ‘양반들’을 새로 규합했습니다. 입대 전에 함께 하던 멤버들이 한 명을 제외하고 모두 제 갈 길을 가고 있어 새로운 멤버를 모집했습니다. 건반 주자를 포함 5인 체제로 재편성했고요. 또 새로운 음반을 준비 중입니다. 그 밖엔 해방촌에 ‘소식'이라는 사찰 음식점을 개업하고 ‘두루미출판사’를 만들어 얼마 전 첫 책을 발간했습니다. 또 ‘풀무질'이라는 헌책방을 공동으로 인수했어요.

 

# 군 생활 도중에 ‘유니뮤직 레이스’에서 상을 받으셨는데, 어떤 기회로 참석을 하게 되었나요?  

전범선: 군인은 영리 활동을 할 수 없다는 말도 안 되는 조항이 있습니다. 음악가로서 음악을 통해 먹고 살아야 하는데, 그걸 막는 조항이 있는 거죠. 그래서 어떻게 하면 합법적으로 음악을 하며, 군법 처벌을 받지 않고, 영리활동을 할 수 있을까 고민했어요. 답은 상금을 주는 대회에 출전하는 것뿐이더라고요. 돈을 주는 대회를 찾다가 통일부 주최의 ‘유니뮤직 레이스’에서 상금 1천만 원이 있길래 제가 할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미합중국 육군과 대한민국 통일부, 국방부가 좋아하는 내용으로 잘 만든다면 완벽하게 합법적인 선에서 영리활동이 가능할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곡을 써 제출했습니다.

 

# 참가에 의의를 둔 정도가 아니라, 처음부터 대상을 노리고 전략적으로 준비를 하셨던 거네요.

전범선: 그렇죠. 현상금 사냥꾼처럼. 제가 군대에서 계산을 해봤어요. 21개월 동안 착취당한 나의 노동력이 최저임금으로만 계산을 해봐도 1,000만 원은 넘겠더라고요. 그러면 1,000만 원은 나라에서 받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하)

 

 

# 그때 만드신 '전선을 간다'의 창작배경을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전범선: 군 복무를 마친 분들은 아시겠지만, 훈련소에서 부르는 ‘육군가’가 있잖아요. 전 그 노래가 참 좋았어요. 그나마 음악적으로 괜찮은 노래거든요. 그런데 전 카투사를 가서 미 육군으로 편입되어 논산 훈련소 이후에는 대한민국 ‘육군가’를 부를 일이 없었어요. ‘전선을 간다’라는 노래는 음악은 좋은데 대다수의 군가가 그렇듯이 좀 암울합니다. 배타적이고. 전 미군 병사들, 대한민국 육군 병사들, 저 건너편의 조선인민군 병사들이 모두 안타까운 동병상련의 처지라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소요산 자락에 미군과 한국군이 함께 있고 그 산너머에 북한군이 있으니 산너머를 중심으로 그림이 그려지더라고요. 새로운 한반도 정세에 맞게끔 나의 사상에 맞게 새로 한번 써보고자 제목은 그대로 두고 가사를 바꿔봤어요.

북조선 인민군도 포용하고. 저 친구들이 제일 불쌍하거든 사실. 나도 불쌍하지만, 쟤들은 7년 동안 썩어야 하고. 옆에 있는 미합중국 육군 애들도 실은 주로 가난한 친구들이 와요. 미국 시민권을 얻기 위해 오는 친구도 많고. 돈을 많이 받긴 하지만 불쌍한 애들이거든. ‘전선을 간다’ 가사를 보면 "같이 갑시다"라는 말이 후렴에 나오는데, 그건 미2사단 구호입니다. ‘한미가 같이 갑시다’라는 뜻의 구호를 제 노래에선 북한 병사들에게 "그대 나와 같이 갑시다"라고 건네죠. 그게 이번 문재인 정부의 정책과 맞아떨어지는 노래인 것 같기도 했고, 또 제 진심이기도 했어요.

 

# 우스갯소리로 “미8군과 교회밴드부가 우리나라 록을 이끌어가는 양대산맥이다”라는 말이 있는데, 그 안에서 직접 경험해보실 때는 어땠나요?

전범선: 저도 고민을 했습니다. 제가 조선 록을 한다고 표방했는데, 과연 그 조선 록이 무엇이냐? 결국 그 뿌리는 미8군 기지촌이거든요. 제가 좋아하는 조선 록스러운 것의 뿌리는 결국 미국에 있는 거죠. 한국 대중음악사를 두부 자르듯 나눠 구분하긴 어렵겠지만, 제 생각에 미8군 중심의 미군을 위한 엔터테인먼트 음악이었을 때와 그 이후 다운타운을 거쳐 홍대 엔터테인먼트가 되었을 때랑 소비자층이 완전히 달라졌어요. 음악 색깔도 그때 확 바뀌었다고 생각합니다. 전 사실 미국이나 영국에서 오래 생활하며 사상적으로는 완전히 영미권 사람이었던 입장에서 조선에 돌아왔을 때 뭔가 멋있는 걸 하고 싶어 조선 록을 찾았어요. 근데 그게 결국은 미국 엔터테인먼트이었더라고요.

1975년에 박정희가 대마초를 금지하고 ‘신중현’을 위시한 미8군 악단들이 다 감옥에 가거나 활동을 중단하거나 미국으로 갔을 때를 저는 어떤 분기점으로 봐요. 1975년 이전 기지촌의 풍경은 로큰롤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마약과 섹스가 있었고, 그게 좋던 안좋았던간에 이후 8, 90년 서울 다운타운이나 홍대에서는 상상할 수 없을만큼의 풍부한 토양이었던 거거든요. 사실 백인 음악과 흑인 음악이 합쳐져 로큰롤이 생겼고, 그런 음악이 또 황인과 만나는 토양이 일본과 태국 정도를 제외하면 세계에서 거의 유일하게 동두천, 파주, 왜간 이런 지역에서 생겼더라고요. 내가 6, 70년대 한국 밴드 음악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냥 미국다워서 그런 것이었구나. 미국다운 것들을 조선인들이 습득해서 풀어냈을 때의 약간 새로운 것을 좋아하는구나.

그 이후 90년대 2000년대 인디음악은 그 전의 한국 로큰롤과 엄연한 차이가 있다고 생각해요. 다 그런 건 아닌데 대다수는 자조적이고… 전 로큰롤의 본질이 기개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기개 같은 것이 느껴지지 않아요. 싸구려 커피나 아메리카노로 대변되는 음악의 소비자층이 다르다 보니까 로큰롤 밴드들도 완전히 재편성되었죠. 그런데 저는 그 유전자가 없더라고요. 그래도 제가 한국 인디 씬에서 8년 정도 왔다 갔다 하면서 부딪혀봤을 때, ‘아 난 왜 저게 별로일까’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내가 보기에는 ‘십센치’나 이런 뮤지션들이 훨씬 한국적인데 한국에서는 나를 한국적이라고 하니까... 제 생각엔 오히려 지금의 인디 음악이 한국적인 거고 제가 하던 조선 록이라는 것은 그냥 미8군 풍경에서 어울렸던 거더라고요. 그때가 오히려 민족성이 섞여 있었고, ‘송골매’까지도 연장이 된다고 생각을 해요.

6, 70년에 일제의 잔재가 지나고 미군과 한국이 확 용광로처럼 섞였을 때가 훨씬 더 저의 음악적 고향인 것 같아요. 전 인디가 싫은 건 아니지만 인디밴드라는 말로 저를 표현하는 것보단 로큰롤 하는 사람이 더 맞다고 생각해요. 또 이제 굳이 한국말만 쓸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어요. 미군에서 2년간 영어로 생활하는데, 미군 친구들이 보기엔 오히려 제가 더 미국인스럽다고 하더라고요. 전 미국에서 대학을 나왔고 이 친구들은 푸에르티코에서 왔어요. 그걸 보면 한국인이지만 문화 사상적으론 제가 싫건 좋건 미국인이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 상황에서 제가 굳이 뭐 무형문화제인 것도 아니고 조선 록의 뿌리는 미8군 기지이니 이렇게 해보자.

제가 들은 가장 충격적인 이야기는 ‘백두산’ 선배들이 합주실 벽에다가 성조기를 크게 걸어놓고 목욕한 다음 김치를 절대 안 먹었대요. ‘빠따끼’ 빠진다고. 하지만 ‘백두산’은 뭔가 한국적인 밴드처럼 느껴지잖아요. 그런데 그 양반들은 그냥 미국처럼 하고 싶었던 거야. 근데 한국인이 미국을 하다 보니까는 다른 게 나온 거지. 그게 오히려 제가 하고 싶은 것 같아요. 제가 한국적인 것으로 포장되는 아이러니를 극복하고 싶어요.

# 그런 아이러니는 군 복무 도중에 체감하게 된 건가요?

전범선: 그렇죠. 거기서 자아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실질적으로 했어요. 군 복무 동안 대한민국의 국토 위에 있는 미국령 안에서 미국의 지휘체계 안에서 살았잖아요. 박근혜를 내려뜨리고 문재인이 당선되고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와 드디어 민주화가 되어서 대한민국이 그 잔재를 청산하겠구나’ 하고 갔는데 나의 통수권자가 트럼프야. 나의 민주적인 의사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이. 그런 걸 보면서 ‘아, 아직 조선이 식민지구나.’라는 것은 온몸으로 느낄 수밖에 없죠. 그게 정말 무기력했고요. 입대 전에 광화문 앞에서 공연했을 때 100만 민중 앞에서 느꼈던 엄청난 힘이 있었어요. 근데 그러고 바로 다음달에 미군 훈련소를 갔는데 제가 보는 앞에서 미군 부사관이 오바마 초상화를 떼고 트럼프 초상화를 걸었어요. 그런 상황이 한두 달 만에 연출되니까... 이건 뭐, 내가 어떻게 하든 간에 내 존재가 이거구나.

공부를 열심히 해서 대한민국에서 가장 좋다는 고등학교에 들어가니까, 거기서 미국 유학을 하러 가라는 거에요.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대한민국에서 그렇게 뭐든 제일 열심히 하면 결국 상부구조인 미 제국에 편입될 수밖에 없겠더라고요. 좋건 싫건 간에 그게 제 일부라는 것을 온몸으로 체감하고 그걸 음악으로 표현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 거죠. 정치적으로 여러 극적인 사건들과 아이러니한 일이 생겼는데, 그러니까 내가 뭐라고 생각하든지 이것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고, 우주의 입장에서 나의 위치는 ‘그냥 미 제국의 변방에서 자라고 심장에 가서 공부하다가 다시 와서 살아가려고 하는 일개 예술가’ 정도로 정리가 되더라고요.

 

# 조선 록의 뿌리에 대한 다큐를 준비 중이시라고 들었습니다. 프로젝트를 설명해 주실 수 있으신가요?

전범선: 제가 동두천에 있을 때 최지호 선생님이라는 평론가가 계셨는데, 그분과 의기투합을 했어요. 동두천이라는 공간이 가진 특수성, 한국 대중 음악사에서 가진 특수성이 있어요. 그런데 미군 기지촌이 동두천 말고 다 없어졌어요. 용산도 그랬지만 이젠 다 내려갔죠. 저희 젊은 세대는 기지촌의 풍경을 상상하기가 어렵죠. 그런데 기지촌 풍경을 상상하지 못하면 한국 대중음악의 뿌리를 알 수가 없어요. 지금 ‘신중현’의 음악을 들으면 ‘와 대단하다. 어떻게 저렇게 나오지?’라는 생각이 들어요. 물론 ‘산울림’의 음악도 좋지만 ‘산울림’ 음악은 딱 서울대 부르주아 음악이에요. 딱 안락한 가택의 풍경인 대한민국 근대의 산실이죠. 그 전에 신중현의 음악을 들으면 이건 딱 미국 음악이에요. 미국 음악인데 약간의 지방색이 있는?

제가 동두천에 있는 기지촌을 순찰했었거든요. 거길 들어가자마자 딱 느낌이 와요. (웃음) 아, 이거구나. 이 풍경에서 사셨으니까 이 느낌이 나올 수 밖에 없구나. 제가 미국 유학 때 거기서 제 친구들 앞에서 공연하고 행사 뛰었을 때 느낌이랑 문화적으로 비슷하거든요. 저는 어떻게 보면 그걸 찾기 위해서 멀리 돌아온 거죠. 그걸 느끼면서 이 기지촌도 좀 있으면 사라질 텐데 영상으로 보존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박정희 정권 때 탄압을 당해 남아 있는 것이 많지 않고 지역 주민분도 이야기하길 꺼리세요. 기지촌에 아픈 역사가 많고 또 기지촌 여성의 문제가 섞여 동두천에서도 그 부분을 억누르고…. 동두천은 사실 록의 성지로 띄우려고 사업을 하고 있어요. ‘동두천 록 페스티벌’을 21년째 하고 있고, 록 박물관까지 생겼어요. 그런데 이걸 띄우면서도 밑에 이야기들은 깨끗하게 버린 거예요. 그런데 이걸 지워버리면 이해가 안 되거든요. 그래서 저는 그걸 담고 싶었어요. 최지호 선생님이랑 내용적인 건 다 준비되었는데, 더 알아보고 있는 상황입니다. 방송사가 좀 끼면 좋겠는데. 아직 촬영을 들어가진 않았고요.

최지호 선생님은 ‘음악 취향 Y’ 필진, 한국 대중 음악상 선정위원이고, 지금은 동두천 생활문화원에서 문화 기획을 하고 계십니다. 저희 [혁명가]에 처음으로 평을 써주신 분이세요. 그렇게 만든 연으로 우연히 제가 동두천 근무를 하면서 자주 만나 뵈었죠. 동두천은 정말 동네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돌아다니시면서 로큰롤을 들으세요. 실제로 보면 뽕짝을 들으실 것 같은 풍경인데, 음악이 옛날 록이예요. 문화적으로 고립되어 있던 곳이에요. 기지촌은 일종의 엔터테인먼트 단지예요. ‘양공주’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미군 밴드들이 있었고. 일종의 라스베가스 같은 건데 그걸 국가에서 제도적으로 관리하고, 착취를 정당화하고 했던거죠. 동두천 분들은 그런 풍경이 너무 익숙하신 분들이신 거죠. 인종적으로도 되게 다양하고요. 지금도 나이지리아 사람들이 되게 많아요. 필리핀, 러시아 분들도 많고. 독특한 풍경이에요. 동두천 미군 부대는 원래 5년 전에 나갔어야 하는 건데, 정해진 게 없고요. 포병 부대만 남았어요. 나머지는 다 평택으로 내려갔는데, 동두천은 평택으로 내려갈 수가 없어서 계속 연기되는 중입니다. 계속 축소되는 중인데 길어야 5년, 빠르면 3년 안에 사라질 풍경이예요. 3년 안에는 기록을 남기고 싶습니다. 그런 모습들을 최지호 선생님과 곳곳이 보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선생님이 연구 기금을 받으셔서 논문을 쓰고 계세요. 그 논문을 대중적으로 풀어내는 콘텐츠를 만들고 싶습니다.

 

 

# 3집 앨범을 전역 이후가 아닌 군 생활 도중에 발표하신 이유가 있나요?

전범선: 제가 생각했을 때 3집까지는 제 아마추어 시절의 흔적들이에요. 이걸 업으로 삼거나 회사와 영리적 관계도 아니었던 순수한 창작물이었고, 만드는 대로 내보낸 거예요. 제 인생의 시기에 어떤 파도들이 있는데, 시간이 지나면 몰입하기가 힘들더라고요. 만일 [혁명가]라는 앨범이 2016년 3월에 나오지 않고 지금 나왔더라면 대중에게도 저에게도 크게 의미가 없는 앨범이었을 거예요. [방랑가]라는 앨범은 제가 입대를 앞두고 2016년에 만든 음악이예요. 제가 방랑을 떠날 포부를 가지고 쓴 거거든요. 그 방랑이라는 것이 군대도 포함되지만 ‘난 앞으로 음악이라는 나그넷길을 떠나겠다.’라는 제 나름의 포부를 적었어요. 그런데 그것을 방랑길을 떠났을 때 내야지, 속세에 들어와서 내면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김삿갓이 시를 쓰고서 떠나야 멋있지. 그리고 [방랑가]를 만든 후 회사와 계약하면서, 회사가 투자했고 제 입대로 활동을 못 해 투자금을 회수하지 못하니 제가 일병쯤에 내자고 이야길 한 거죠. 지금은 완전히 새로운 것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 이름을 ‘전범선과 양반들’에서 ‘양반들’로 변경했는데 특별한 의미가 있나요?

전범선: 한글 이름은 ‘전범선과 양반들’로 가고요. 영어 이름이 너무 길어서 ‘양반스’로. 방탄소년단이 ‘BTS’ 하는 것처럼요. (웃음) 제가 미군 동료들에게 밴드 한다고 할 때 ‘전범선 and 양반들’이라고 하면 전범선도 설명해야 하고 양반들도 설명해야 해서 길어지더라고요. 그래서 둘 중 하나 고르면 ‘양반스’로 하자.

 

# 양반은 뭐라고 설명하셨나요?

전범선: 양반은 한국의 지배 계층이다. 귀족이라고 얘기를 했죠. 그런데 요즘은 제 [혁명가] 사진이 먼저 나와서… (웃음) 일본의 사무라이 같은 거다. 이렇게 설명합니다.

 

# 최근 발표한 ‘보따리’는 펑키하고 사이키델릭한 느낌도 있고, ‘태평천하’도 밝은 느낌이었어요. 어떤 인터뷰에서 다음 앨범을 [희망가]로 하는 게 좋지 않겠냐고 했었는데, 새로 준비하는 음악은 밝은 쪽으로 잡고 하시는 건가요?

전범선: 아뇨. [희망가]는 그냥 농담으로 한 이야기고요. 앞으로는 콘셉 음반은 좀 못 내겠죠. 한동안 정규를 못 내니까. 음악 자체에 집중을 해보고. 새로 들어온 ‘양반들’ 연주 실력이 굉장히 뛰어납니다. 그래서 그 친구들과 밴드로서의 합을 기대하고요. 미8군 악단의 핵심은 연주를 정말 잘했다는 거예요. 왜냐면 흑인 클럽에 가면 소울을 연주하고, 백인 병사 클럽에 가면 로큰롤을 연주하고. 백인 장교 클럽에 가면 컨트리를 연주해야 하니까요. 합이 엄청났던 거죠. 그런 것처럼 저도 다양한 장르를 시도해 보려고 하고 있습니다. 원래는 하드록적 성격이 짙었다면, 이젠 패러다임을 넓힐 수 있을 것 같단 생각입니다.

 

 

# 한국적인 주제의 영감은 주로 어디서 얻고 계시는가요?

전범선: 돌이켜보면 모든 상황의 시발점은 ‘민족사관고등학교’인 것 같습니다. 제가 만약 ‘대원외고’나 ‘용인외고’를 갔으면 한복 입고 상투 틀고 있을 것 같진 않아요. 고등학교 때 민족사관이라는 말도 안되는 세뇌를 하면서, ‘영어 써라’, ‘한복 입어라’라는 강요를 했는데, 그 당시에는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못했어요. 민족사관의 ‘사관’이 역사관인데, 그때는 그냥 육군사관 같은 사관이라고 생각했어요. 대부분 민사고 학생들이 그러고 다녀요. 그렇다고 학교에서 그만큼 역사 공부를 시키는 것도 아니에요. 영어 이름은 오히려 ‘리더십 아카데미’예요. (웃음) 어쨌든 역사 공부를 하면서 좋고 나쁜 게 있었는데, 그런 것들을 생각하다 보니 제 정체성이 반작용으로 나온 것 같아요. 고등학교 때 밴드 동아리 방이 한옥이었어요. 교복도 한복이어서 자연스럽게 한옥에서 한복을 입고 기타를 치며 합주했는데, 생각해보니까 이건 저만 그랬던 거예요. 남들이 봤을 땐 이게 컨셉일 수도 있는 거죠. 이렇게 제 몸에 체화된 것들이 영감으로 오는 것 같아요. 그다음으로는 제가 읽는 책들에서 받는 것 같습니다. 언어적인 개념들이요. ‘지화자’라는 노래 같은 경우에는 안동 탈춤에 관한 책을 보다가 영감을 받았고요.

 

# 70년대 대한민국 로큰롤과 미국 로큰롤에서 영감을 많이 받았다고 했는데, 당시 음악을 따로 찾아 듣나요?

전범선: 매일 듣죠. 맨날 듣다 보니까 찾아 듣진 않아요. 너무 그것만 들어왔기 때문에... 힙합을 찾아 들으려 하고 있고요. 제가 또 대중가요를 잘 몰라요. 제 또래가 다 아는 ‘젝스키스’, ‘god’가 저에겐 전혀 없는 거예요. 민사고 집단 친구들은 미국화된 아이들이라 그 안에서 록 밖에 안 들었어요. 그리고 20대 초반에는 외국에 있었으니까, 한국에서 대중음악을 하는 사람으로서 대중과 소통이 되어야 하는데 모르겠더라고요. 제가 멋있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당연하지 않은 거죠. ‘소란’, ‘십센치’, ‘버즈’, ‘SG워너비’ 등등 그런 가수분들이 한국의 대명사인 것 같아요. 그 괴리감을 극복하려고 요즘엔 <쇼미 더 머니>도 보고, 아이돌 음악도 들어보고 있죠.

 

# 한국 대중음악인 케이팝이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많이 끌고 있는데, 보통 리스너들이 듣기에는 약간 무국적이란 느낌이 들잖아요. 이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전범선: 미국 친구들은 이미 ‘한국=케이팝’이라고 인식하고 있어서, 그 자체를 굉장히 한국적이라고 느끼는 것 같아요. 사실 한국적이라는 것이 본질이 있어 불변하는 건 아니잖아요. 제가 아쉬운 것은 그 한국적이라는 것이 ‘너무 뿌리가 없다.’ 그리고 ‘너무 사대주의적이다.’라는 것에 대한 것이고요. 사대주의적인 것을 보면 저는 사실 창피하거든요. 고국에서 생기는 그런 것들은 제가 타국의 친구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은 아니었어요. 물론 방탄소년단도, 소녀시대도 인기는 많았지만요. 하지만 거기에서 자부심을 느낀다 해도 그건 현대나 삼성을 보며 느끼는 자부심 정도예요. ‘이게 바로 조선 반도에서 나올 수 없는 멋있는 거야.’라고 말하긴 힘들거든요. 영국이 문화적으로 되게 보수적인 나라예요. 그런데 옥스퍼드에 가면 800년 된 펍이 있고, 문화적인 연속성에서 나오는 엄청난 자부심이 있어요. 특히나 제가 옥스퍼드에 있는 귀족들을 보고 양반들이라는 이름을 지었거든요. 그들은 망토를 입고 밥을 먹고, 밥 먹기 전에 라틴어로 기도하는 그런 것이 처음에는 되게 우스웠는데, 그게 계급상으로 반발심이 느껴지면서도 매력적으로 느껴지더라고요.

 

# 사찰 음식 공간인 ‘소식’을 운영하고 계시는데, 그 공간을 소개해 주실 수 있나요?

전범선: 저는 끊긴 맥을 이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어요. 하지만 작위적인 것은 싫어요. 음악으로 보면 미국의 경우, 포크가 바로 민요 음악이죠. 백인 민요 음악과 흑인 민요 음악이 같이 나오면서 재즈가 되고 랙타임이 되고 로큰롤이 되고 디스코가 되고 이어져 왔어요. 그런데 조선 반도의 민요는 지금의 대중음악과는 접점이 없었잖아요. 그렇게 비어있는 상태에서 억지로 뒤를 붙이면 어색해지는 경우들이 있는 것 같아요. 제가 가진 기본적인 화두가 ‘본래 정신을 갖고 오면서 형식은 새롭게 해야 하지 않을까?’라는 것입니다.

음악에서 제가 하는 것을 먹는 것으로 하자라는 생각이 있었어요. 제가 동물권적 입장에서 채식하고 있어요. 한국의 채식이 서양권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들 하는데 사실 서양의 채식 문화는 동양에서 가져간 거예요. 영국에서 18세기 정도에 채식 문화가 생겼는데, 그건 인도의 불교와 힌두교 문화에서 나왔어요. 사실 조선 반도에서도 천 년 넘게 해오던 것인데, 채식하는 것이 약간 대중음악의 현상이랑 비슷한 것 같더라고요. 거기서 아쉬움을 느껴서, 사찰 음식을 재해석하자는 취지로 뜻 맞는 친구 두 명과 같이 시작한 겁니다.

# 채식은 언제부터 어떻게 하게 되셨나요?

전범선: 채식은 7년 전부터 하게 되었고요. 대학 다닐 때 [동물해방]이란 책을 읽고 반박을 할 수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시작했습니다. 단계별로 확장을 하다가 지금은 우유, 달걀, 고기 등등 다 끊어서 비건입니다.

 

# 앞으로 ‘소식’은 어떻게 운영할 예정인가요?

전범선: 기본적으로는 사찰 음식점인데, 기존 조계종에서 운영하는 음식점과는 아예 다른 성격이고요. 일단 기본적으로 꼬치구이 안주에 전통주를 팝니다. 자체적인 양주와 막걸리도 팔 예정이고요. 약주랑 소주도 있고. 기본적으로 술 먹을 수 있는 주막 같은 느낌인데, 술 먹는 사찰이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웃음) 저는 술이라는 것이 정신수양의 기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술을 팔고, 식사하시고 싶은 분들은 덮밥 요리를 제공하는데, 사찰처럼 한 그릇에 제공할 거고요. 비건입니다. 그런 식으로 운영할 생각입니다. 주방장이 따로 있기 때문에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 ‘두루미 출판사’는 어떻게 하시게 된 것인가요?

전범선: 똑같은 맥락에서 대를 잇자는 거예요. 제가 정치사상사를 전공했어요. 석사까지 하고 음악을 하겠다고 선포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아까운 거예요. 그리고 전 평생 공부를 그만둘 생각이 없습니다. 지금도 개인적으로 공부를 하고 있고, 이걸 대중들과 공유하고 소통하고 싶어요. 그런데 제가 군대에 있는 동안 정치 상황이 바뀌면서 이제 조선 땅에도 사상이 좀 살아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물론 아직 국가보안법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예전과 다르게 사상의 폭이 많이 넓어졌다는 생각에 시작했습니다. 첫 책은 ‘허정숙’이라는 월북, 사회주의, 여성해방 운동가의 글을 모아서 출판했고요. 그다음에는 ‘장준하’ 선생 같은 분의 글을 모아서 출판할 계획입니다. 남에서도 북에서도 핍박받은 분들의 글을 모아 출판할 예정입니다.

 

# 최근에 중고 서적 책방 ‘풀무질’을 인수하셨던데요. 책방 운영은 사양산업이라고 불릴 정도로 어려운데, 어떻게 결심하셨나요?

전범선: 두루미출판사와 연계된 헌책방을 만들고 싶다는 꿈은 예전부터 있었습니다. 그러다 폐업위기에 처한 풀무질이 정신을 계승할 인수자를 찾는다는 기사를 보았고, 곧바로 방문했습니다. ‘풀무질’은 불을 피우기 위해 바람을 일으키는 행위입니다. 과거의 풀무질이 독재에 대항하는 혁명의 횃불을 모으는 곳이었다면, 앞으로는 우리 각자의 마음속에 꺼져가는 삶의 불씨를 다시 지피는 공간으로 만들어갈 생각입니다. 독립 책방이 어렵다고 하는데, 설마 인디 밴드보다 어렵겠습니까? CD 파는 것보다 책 파는 게 낫다는 생각입니다.

 

 

# ‘랏도의 밴드뮤직’에서 DJ도 하고 계시는데, 어떻게 시작했나요?

전범선: ‘로큰롤이 좀 살았으면 좋겠다.’하는 마음에서. 로큰롤 커뮤니티의 중심점이 그래도 랏도의 밴드뮤직인 것 같았고, 제가 좋아하는 분들도 많아 한번 해보자는 취지로 시작했습니다. 사실 굳이 따지자면, 랏도의 밴드뮤직도 로큰롤보다는 감성적인 인디 뮤직에 더 가깝긴 해요. 화요일 9시부터 11시까지 진행 중이예요.

 

# 현재 유튜브 채널도 운영 중이신데, 다른 계획이 또 있으신가요?

전범선: 지금 하고 있는 거나 제대로 하자라는 생각이고요. 유튜브 채널은 요즘 유튜브를 안 하면 살아남을 수가 없어서.. 회사 팀장님이 꼭 해야 한다고 해서 시작했는데 재밌더라고요. 음악 이야기보다는 정치 이야기를 좀 하고 싶어서요. 개인적으로 ‘신해철’ 선배님이 하셨던 음악도 음악이지만, 음악가로서 사회적인 입지 그런 것들을 굉장히 존경합니다. 할 말 하고 자기 이야기를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 입대 전에 한 공연장에서 앞으로의 목표가 ‘입신양명’이라고 하셨는데, 지금도 그러신가요?

전범선: 일단 계획한 것은 실행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입신양명’이라는 좌우명은 변하지 않습니다. 사실 모든 예술가가 명예욕 때문에 하는 거잖아요. 부정하는 순간 자기기만인 것 같아요. 제가 돈에 욕심이 있었다면 음악을 하지 않았겠죠. 그러나 계획대로 되는지는 사업의 손익분기점이 넘으면… (웃음) 그때 알 수 있겠죠. 지금은 뭐 계획한 것을 실행하려고 하는 중입니다.

 

# 마지막으로 팬분들에게 한마디 해주신다면요?

전범선: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해서… (웃음) 일단 읽어주셔서 감사하고요. 제가 2019년부터는 공연들을 정말 알차게 계획할 생각이에요. 2018년은 멤버들도 새로 들어오느라 손 풀었고요. 2019년부터는 기획한 공연을 잘할 생각입니다. 굿판을 짜는 것처럼 판을 재밌게 짜서 한 번 놀아보려고 하니까. 제가 로큰롤을 하는 이유는 그냥 무아지경에 이르기 위해서밖에 없어요. 그니까 저의 이런 부차적인 짐들이 팬분들이 음악을 즐기는 데 방해가 되실 수 있으니까. 그런 것들은 무시해 주시고 오셔서 다 같이 즐기실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쇼맨으로 생각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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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진행자 : 김민집, 이예림
번역: 노송희
교정 : 임도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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