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된 날짜 2018년 08월 09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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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일리쉬한 액션 영화의 총체라는 평을 받는 [드라이브]를 소개하는 키워드는 다양하다. 칸 영화제 수상작, 정적인 액션 영화, 라이언 고슬링, 신디 사이저, 폭력 미학. 이중 가장 눈에 띄는 건 적재적소의 음악 사용이다. 레드 핫 칠리 페퍼스 드러머 출신의 음악 감독 클리프 마르티네즈의 주도로 이루어진 선곡들은 어쩌면 또 하나의 평범한 액션물에 머물렀을지도 모를 영화에 특별한 매력을 부여한다. 이 중 몇 곡을 영화의 스토리와 함께 소개해보고자 한다.


[드라이브]는 노래 한 곡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감독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듣고 훗날 [드라이브]의 주인공이 되는 라이언 고슬링에게 이런 음악을 들으며 운전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만들어 보고 싶다고 제안한다. 라이언은 흔쾌히 수락했고, 이는 ‘드라이브’가 만들어지는 첫걸음이 된다. 


Reo Speedwagon
Can't fight this feeling

"I can't fight this feeling any longer 이 감정과 더 이상 싸울 수 없어요

And yet I'm still afraid to let it flow 하지만 아직도 이걸 내버려 두기엔 두려워요

You give my life direction 당신은 내 삶의 방향을 주었고
You make everything so clear 모든 걸 명확히 만들었죠

And even as I wander I'm keeping you in sight 내가 방황할 때 조차도 난 당신을 계속 보고 있었어요

My life has been such a whirlwind since I saw you 당신을 본 이후로 내 삶은 소용돌이 같아요"

이 감정을 이겨 낼 수 없다고 호소하는 절절한 노랫말처럼 극 중 드라이버(라이언 고슬링)는 사랑하는 그녀(캐리 멀리건)에게 열렬한 사랑을 품으면서도 마음을 고백할 수 없다. 그저 그녀의 뒤에서 묵묵히 그녀의 현실을 지킬 뿐이다. 우리는 영화가 끝날 때까지 드라이버의 이름을 알지 못한다.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어디에도 그의 이름이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그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영화의 끝에 다다라서는 그의 생사가 어떻게 될지 또한 알지 못한다. 그저 짐작할 뿐이다. 말수가 적은 그의 감정을 대변이라도 하듯 나오는 음악을 들으며.

주인공임에도 이름 한 번 등장하지 않는 남자의 직업은 자동차 정비사이다. 또한, 가끔 스턴트맨으로도 일하고 밤에는 범죄 조직의 도주를 돕는 ‘드라이버’도 병행한다. 어느 날 남자는 이웃에 사는 한 여자(아이린)에게 반하게 된다. 하지만 감옥에 있던 그녀의 남편이 출소하고 나서부터 사건은 뒤엉키기 시작한다. 남자는 여자의 남편이 진 빚으로 그녀와 그녀의 아이가 위험에 빠질 것을 우려해 남편을 도와 범죄에 가담한다. 고단한 일상을 꾸려나가는 여자와 과거를 숨기고 사는 남자의 만남. 여자의 일상을 지키기 위해 범죄에 휘말리게 된 남자의 이야기. 흔한 장르 중 하나인 액션 스릴러. 새롭지 않은 스토리. ‘드라이브’를 새롭게 만드는 건 온전히 영상과 음악의 힘이다.


Kavinsky 
Nightcall

영화 곳곳에 묻어나는 80년대의 색채를 여실히 느끼게 해주는 곡이다. 실제로 카빈스키는 80년대 인기 음악 장르인 신스팝 스타일로 인기를 얻었다고 한다. 영화 초반, 화려한 불빛과 네온사인으로 가득 차 있지만 어쩐지 삭막해 보이는 도시의 풍경과 범죄 조직의 도주를 도운 후 도로를 누비는 드라이버의 쓸쓸한 표정과 잘 어울리는 곡이다.


Desire 
Under your spell

조금씩 마음이 설레게 둥둥거리며 시작하는 이 곡은 아이린의 남편 스탠더드의 출소 축하 파티에서 울려 퍼진다. 주인공은 벽 너머로 들리는 음악을 들으며 자동차 부품 수리에 몰두하다 결국 집을 나선다. 축하 인사를 건네는 사람들 속 왠지 슬퍼 보이는 아이린과 집에서 나오는 주인공의 시선이 교차될 때까지 음악은 계속되는데, 가사가 인상적이다. 이 전의 마법 같던 시간들은 사라지고 현실에 눈뜨게 됐을 때 혼란스러워하는 그들의 모습을 잘 표현해준다고 볼 수 있다. 

 

"I don't eat 먹지도 못해

I don't sleep 잠도 못 자

I do nothing but think of you 너를 생각하는 것 빼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

You keep me under your spell 난 너의 주문에 빠져있어"

 


Riz Ortolani & Katina Ranieri ​
Oh My Love

영화의 클라이막스에 흘러나오는 이 곡은 복수를 하러 가는 주인공의 상황과는 대조된다. 영화에서 가장 잔인한 장면이 펼쳐지는 순간 아름답다 못해 경건하기까지 한 음악과 함께 슬로우 모션으로 천천히 펼쳐지는 액션씬은 역설적인 만큼 강한 인상을 준다. 이탈리아의 영화 음악 거장 리즈 오르톨라니가 작곡하고 그의 아내 카티나 라니에리가 부른 이 인상적인 노래는 1971년작 ‘굿바이 엉클 톰’의 주제곡으로도 사용된 적이 있다. 

 


College & Electric Youth  
A Real Hero

A real hero는 주인공을 가장 잘 설명하는 음악이라고 볼 수 있다. 그의 존재는 아이린에게 만큼은 구원이나 다름없다. 출소한 남편이 다시 범죄를 저질러 몰살당할 뻔한 그녀의 가정을 아무런 대가 없이 그저 사랑하기 때문에, 남편을 돕고, 아이린을 보호하고, 아이를 보살피기 때문이다.

이 곡은 영화에서 총 2번 등장한다. 첫 번째는 첫 데이트 때인데, 아이린의 따뜻한 눈빛에서 부터 시작되는 선율과 석양을 받으며 천천히 질주해나가는 드라이브 씬은 영화에서 유일하게 밝고 걱정 없이 볼 수 있는 씬이다.    

두 번째는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데, 그의 생사를 알 수 없기 때문에 더욱 여운을 준다. 이때 드라이버의 대사를 보면,

 

"얘기할 수 있을까요?

그렇게 오래 붙들고 있지 않을게요.

나는 지금 어딘가로 가야 해요.

내가 돌아올 수 있다고 생각되지 않아요.

나는 그냥 당신이 알아주었으면 좋겠어요.

당신 주변에 있었던 것이

내게 일어났던 가장 최고의 일이었다는 것을요."

 

베트맨이 자신의 소임을 다하고 어둠 속으로 사라지듯이, 드라이버는 떠난다. 말 없던 그가 끝끝내 전하지 못했던 진심을 털어놓고선.

이렇듯 [드라이브]는 다소 평면적인 스토리 라인을 진부하지 않게 꽉 찬 사운드와 스타일리쉬한 영상들로 채운다. 화려하고 역동적인 액션과 cg는 없지만, 시종일관 잔잔하게 흐르는 묵직한 분위기와 귀에 박히는 감각적인 ost들로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을 뿐이다.

 


글쓴이: 박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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